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정 Aug 22. 2024

친구를 데려온 불행이.

두 번째 응급실

엄마는 강하다. 언제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한참이 지난 후에 언젠가 엄마가 그랬다. 다 지나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수술 전에 알았더라면 엄마는 내 말처럼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하고 몰래 숨어서 울기만 했을 거라고..

누구보다 간절했을 엄마의 기도 덕분에 나는 별다른 이상 소견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엄마는 그저 평상시보다 아주 조금(?) 더 자주 먹고 싶은 건 없는지, 피곤하진 않은지, 나의 안부를 확인한다. 추적 검사로 병원에 가는 날이면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는 괜찮다는 결과를 엄마 귀로 직접 듣고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 돌아간다. 3년이 지난 지금도..


수술도, 응급실에 있던 날도 먼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생각해 보면 한 때의 해프닝(?)쯤으로 여겨질 날이 올 거라는 걸 나는 안다. 지난 일들이 다 그래왔으니까.

아빠를 잃은 상실도, 입시 실패도.. 겪지 않아도 되는 일들을 일찌감치 겪어내며 배운 건,


다 지나간다는 거..


그리고..

내 몸이, 머리가 기억하고 있는 힘들기만 했던 그때의 그 일들이, 언젠가 삶의 무게에 짓눌려 참기 싫어지고 힘들기만 하다고 느껴지는 버거운 삶을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 건넬 수 있는 작은 위로가, 위안이 되어 주기도 한다는 거..

그러니 나쁘기만 한 경험은 없다는 거..


덕분에 나는 꽤 잘 들어주는 어른으로 성장했고, 상대방의 마음을 한 번은 더 공감해 보려고 애쓰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의견이다^^)

물론 여전히 예민하고 까다롭지만..






수술을 하기 전에도, 하고 나서도 세상은 온통 코로나로 시끄러웠다.

확진자 수가 매일 아침 10시에 공개되던 시절, 맘카페에는 동네 어디 아파트에 확진자가 나왔다더라.. 확진자가 어디 식당을 다녀갔다더라.. '카더라' 뉴스가 매일 한 보따리씩 쏟아졌고 사람들을 불안하게 했다.


그 당시 나는 거의.. '소독에 미친 자'였다.

다른 사람에게 폐 끼치는 걸 세상 싫어하는 나의 별난 성격은 코로나로 한층 업그레이드 되어 갔다.

하루 3타임, 레벨로 운영하던 수업은 형제, 자매 등 가족이나 집에도 자주 들락거리는 친한 아이들로 짜여진 시간표로 변경했고, 많아야 서너 명의 아이들이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수업할 수 있도록 책상도 시간마다 이리저리 옮겼다. 수업 시간을 조금씩 줄여가며 조절했지만 적지 않은 인원을 2~4명씩 쪼개 수업을 하다 보니 나의 하루가, 일주일이 길어졌다.

출근하며 들를 수 있는 약국에 모두 들어가 마스크와 알코올을 확인했고, 요일제로 바뀌었을 땐 남편과 엄마, 언니까지 줄을 세우기도 했다. 한마디로 난리난리..

그 난리는 학원 안에서 가장 심했는데, 아이들은 도착과 동시에 손을 씻어야만 교실에 들어올 수 있었고, (가능한 못 마시게 했지만) 물을 마시겠다고 하면 학원 밖으로 나가서 마시게 했다. 쉬는 시간마다 환기는 물론 알코올이 든 분무기와 물티슈를 손에 꼭 쥐고 아이들이 앉은 의자와 책상, 아이들의 손길이 닿았을 것 같은 모든 곳에 분무기를 뿌려댔다. 이 과정이 끝날 때까지

아이들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했는데, 이 모습을 지켜본 상가의 다른 분들이 하나같이 나의 지독함(?)에 혀를 내두르셨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나가지 않았고 심지어는 엄마에게도 자주 가지 않았다.   "유난도 떤다" 며 누군가가 보내는 곱지 않은 시선과 수군거림이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언젠가 한 아이가 물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냐고..

훗날 부메랑이 돼서 돌아온 그날의 나의 대답.

"만약에 니들 중 누군가가 학원에서 코로나에 걸렸어. 같이 수업했던 친구도 걸렸어. 그럼 우리 모두 2주 격리해야지? 엄마, 아빠, 다른 가족도 다 격리해야겠지? 근데 만약에 다른 친구도 걸리고 그 친구 엄마, 아빠도 걸리고 하면? 그 주변분들도 다 격리해야지? 봐바~~ 이게 너무 큰 피해를 주는 거야. 생각하기도 싫지만 진짜 만의 하나라도 코로나에 걸린 니들 중 한 명이 빨리 낫지도 않고 막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격리 병동에 입원하고 그러면 어떡해? 선생님은 그게 너무 힘들 거 같아. 아마.. 학원문을 닫지 않을까?? 그래서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 조금씩만 참자~~!!"


수술하고 2주가 조금 지났을 무렵 푸르른 5월의 어느 날, 나는 한번 더 응급실을 다녀왔다. 이번엔 내 발로.

첫 번째처럼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또다시 출혈이 시작됐고 워낙 기분 나쁜 경험이었던지라 무서운 마음에

얼른 병원에 전화를 걸어 안내받은 뒤의 방문이었다.

응급실 선생님들과 반가운(?) 재회 인사를 나눈 후

담당 선생님을 마주한 자리,

"두 번은 잘 안 오는데~~ 조심 안 하네~~"

핑계를 대보자면..

영어학원에서 일하며 나는 일 년에 딱 두 번, 이틀을 나 나름대로 성대하게 준비한다. 바로 어린이날과 핼러윈.

다행히 코로나 핑계로 예년과는 다른 조촐한 어린이날 이벤트로 마무리했지만 그래도 조금 많이 움직인 건 사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는데 내 원칙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욕심을 냈고 무리를 한 모양이다. 그 결과는 역시나 응급실이었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참 잘한 결정이었다. 결과적으론 나와 아이들의 마지막 어린이날 이벤트가 되었으니까..






마스크로 한층 더 답답하고 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던

2021년 7월의 마지막 주.

누군가는 코로나 덕분에 사람들이 없어 더 좋다며 놀이공원도 가고 휴가도 떠나는 여름 방학이 되었다.

학원은 마지막주 수요일부터 방학이라 화요일 수업을 마치고 이제 8월에 만나자며 아이들과 인사를 나눴다. 특별한 계획은 없었다. 이 와중에 어딜 갈 수도 없고 그저, 수요일 하루는 좀 쉬고 목요일이나 금요일쯤 전문 방역 업체를 불러 전체 소독을 싹 한번 해야겠다.. 역시나 분무기와 물티슈를 손에 쥔 채 생각했다.


수요일, 늦은 아침을 먹고 남편을 출근시키고.. 다이0에 알코올이 들어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역시나 품절.. 조금 일찍 나올걸 후회하며 터덜터덜 걷다 눈에 띈 긴 줄.. 코로나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수술받았을 때 병원에서 받은 검사가 전부였던 나는 동네 한편에 마련된 임시선별검사소로 발길을 돌렸다.


'그래 쉬면서 검사나 한번 받자.'


느낌일 수도 있지만, 느낌일 테지만.. 병원에서 받은 검사보다는 훨씬 아프게 느껴졌다. 검사받고 온 아이들이 왜 그리 아팠다고 하는지 그제야 알게 됐다. 워낙 많은 사람들을 검사해야 하니까..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기 위해 그랬을 수밖에 없었겠지만 어른인 나도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의 따끔한 고통이었다. 50분 정도, 땡볕에 서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받지 않아도 됐을 검사를 받고 나오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다음 주에 아이들을 만나서 "선생님은 방학 때 뭐 했어요~~?" 하고 물으면 음성 판정받은 문자를 보여주며 "코로나 검사받았지~~' 해줘야지!!" 혹시나 있을지 모를 아이들과

부모님의 작은 불안마저도 안심으로 바꾸고 싶었던

그날의 나의 선택은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이 됐다는 걸 다음 날 아침이 돼서야 깨닫게 됐다.


저녁부터 몸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는 늘 방학마다 아프니까..

긴장을 하며 일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늘 방학이

되면 조금 아팠다. 열도 나고 입맛도 없고.. 아프다가도 일하러 나가면 괜찮아지고, 집에 오면 다시 아프곤 했던 나였으니까 그때도 그저 그런 가벼운 몸살? 쯤으로 생각했다. 이상하다고 생각되기 시작한 건 남편이 퇴근을 할 무렵의 늦은 밤쯤..

38.6도. 온도계에 찍힌 숫자를 확인한 후 혹시 몰라

방 안에서 나 홀로 자발적 격리를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과 그럴 리가 없잖아? 하는 마음이 동시에 찾아와

혼란스러운 긴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낯선 번호로 전화벨이 울린다.


'암'이라는 친구가 친구를 데려왔다.

'코로나'라는 이름의 또 다른 불행이를..





-이미지 출처-

(불행이 나만 피해갈 리 없지) 글:정미진/그림:김소라






이전 04화 엄마에게 들려줘야만 하는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