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기
아들 녀석을 학교에 데려다준 후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하니 아홉 시 반이 안 됐다. 남편은 깨어 있었다. 남편은 자기 이름은 분명하게 기억하면서도 내 이름은 미경이가 되었다가 은영이가 되었다가 했다. 몇 번을 묻기를 반복한 끝에야 비로소 나를 신순옥이라고 불렀다. 자기 이름은 잊지 않고 지켜낸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남편 먹이려고 소고기와 시금치를 갈아 죽을 쑤었다. 믹서기에 간 김치와 함께 떠먹여 주니 잘 삼킨다. 사레 걸리지 않고 음식을 받아먹는 모습에, 욕심이 나서 플레인 요구르트까지 먹였다. 목구멍으로 음식이 넘어가자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앉아 있는 시간이 어제보다 길어졌다.
점심 무렵, 딸아이 친구 엄마가 병문안을 왔다. 나를 언니라 부르며 따르는 이였다. 늘 남편을 “작가님”이라 부르며 책 이야기를 즐겨 나누던 이인데, 누워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남편 앞에서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 눈물이 전염처럼 내 감정을 건드렸다. 의연해야지 싶으면서도 그러지 못했다. 두 사람은 병원 근처 백반집에서 함께 밥을 먹었지만, 말이 줄어든 식탁에는 무겁고 침울한 공기만 흘렀다. 밥을 먹는 일이 이렇게 고역일 수 있구나 싶었다.
저녁 무렵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는 “아이들이 없을 때 실컷 울었다”고 말씀하셨다. 하루 종일 고통과 슬픔으로 얼룩진 얼굴이었다. 아들을 잃어야 한다는 예감은 노모의 가슴을 허물어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슬픔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나는 여전히 난감했다. 나 또한 감정의 덩어리인데, 어머니 앞에서는 오히려 말문이 막힌다. 부둥켜안고 울 수도 없는 자리에서, 나는 그저 식탁 바닥만 내려다본다.
어머니는 막걸리를 찾으셨다. 집에 있는 줄 알고 사오지 않았더니 서운해하셨다. 결국 슈퍼에 들러 막걸리를 사왔다. 식탁에서 어머니는 안주도 없이 막걸리 잔을 기울였고, 아이들과 아버님은 식사를 했다. 한숨 끝에 또 울음을 터뜨리는 어머니. 식사 자리는 어느새 장례식장 같았다. 말없이 숟가락을 들어 올렸지만, 밥은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먹는 것도 없으면서 벌써 체기가 느껴졌다. 아마도 밥이 아니라, 가슴에 쌓인 눈물과 한숨이 체가 되어 목울대를 막고 있는 것이리라. 남편의 병세, 어머니의 오열, 아이들, 아이들의 눈물…. 이 모든 감정들이 소화되지 못한 채, 내 속에서 돌덩이처럼 걸렸다. 그 체기를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채 하루를 살아냈다.
(당신이 떠나기 전 3월 중순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