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친구
주말이 가까워지자 어머니, 아버지가 댁으로 돌아가셨다. 집안 정리도 하고, 병원에서 혈압 약도 타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이 하교할 즈음 병원에서 나왔다. 집에 엄마가 있으니 두 아이는 잡지를 보며 웃고 떠들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오랜만에 집 안을 환하게 채웠다. 그러나 그 평화는 잠시였다. 곧 사소한 일로 말다툼이 붙더니, 작은아이가 억울한 듯 울음을 터뜨렸다. 울고 있는 얼굴을 보자 내 안의 감정이 덩달아 요동쳤다. 아이의 말을 들어주기보다 울음을 그치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아이는 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분필 긁는 소리 같은 짜증으로 더 깊은 짜증을 자극했다. 남편 병원 다니느라 제대로 돌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미안했던 마음마저 순간 증발해버렸다.
“아빠는 아파서 병원에 누워 있는데, 집에서 할 짓이 없어서 싸움질이냐?”
나도 모르게 아빠라는 말이 터져나오자 시야가 흐려졌다. 아이들에게 늘 말해왔다. 너희들이 사이좋게 지내야 아픈 아빠도 힘을 낼 수 있다고. 하지만 침울한 집안 공기가 아이들에게 스며들지 않았을 리 없다. 그것이 다툼으로 터져 나온 것이겠지. 그 사실을 떠올리자 아이들이 더욱 짠해졌다. 목소리가 젖어드는 걸 알아챘는지, 아이는 흐느끼며 눈물을 쏟았다. 자기가 잘못했단다. 그러니 엄마는 울지 말라고 한다. 잘못은 자기에게 있는데, 엄마의 눈물은 감당하기 싫은 것이리라.
“야단 맞는 주제에 엄마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
나는 안방 화장실 문턱에 주저앉았다. 이럴 땐 오래 버티는 쪽이 이기는 법이다. 그러나 아이를 이겨서 무엇을 얻겠는가. 뜻대로 되는 게 없는 세상에서, 힘없는 아이에게조차 승리하려는 못된 오기일 뿐. 내 안에 쌓여 넘치는 무력감이 그냥 철퍼덕 주저앉아 있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오전에 본 남편은 힘들어 보였다. 무언가를 말하는데, 내게 전하려는 말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내 답답함만이 아니라 그의 답답함도 얼마나 클까. 알아듣지 못하는 상대 앞에서 말을 이어가는 일, 그 절망은 양쪽 모두의 몫이었다. 점심 뒤에는 멀뚱히 TV를 바라보거나, 주위를 뚫어지게 관찰하며 호기심 많은 아이 같은 얼굴을 짓기도 했다.
그러다 뜻밖에 남편이 한 이름을 불렀다. 그토록 아끼던 친구였다.
“여보, 상수 씨가 누군지 알아요? 당신 친구잖아요. 전화 걸어줄까요?”
남편은 상수가 자기 친구가 아니라고 했다. 혹시 목소리를 들으면 기억이 날까 싶어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말없이 들었고, 상수 형은 옛날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친구의 기억을 붙잡으려 애썼다. 한참 뒤, 내가 “잘 지내라고 해”라고 시키자 남편은 그대로 따라 했다.
남편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언제부터 이 지경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그런 나 자신이 한없이 미웠다. 그래도, 그래도 어쩌랴. 영영 잃어버릴 뻔했던 사람이 아직 내 곁에 숨 쉬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팔푼이 남편이면 어떤가. 이름을 잊고, 말은 흐릿해도, 살아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게는 이미 기적이다.
여보, 살아만 있어다오. 당신의 숨결이 이어지는 한, 나는 아직 버틸 수 있다.
비록 어제의 당신이 오늘의 당신을 잠식해가고, 내일은 또 다른 낯선 얼굴로 바뀔지라도 괜찮다. 당신이 존재하는 순간만은 우리는 여전히 함께인 것이다.
사라져가는 것들 속에서도 당신이 내 곁에 있다는 이 기적, 그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당신이 떠나기 전 3월 중순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