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

by 인상파

평론가


비까지 오는 날, 상수 형이 평택에서 친구를 만나러 병실에 들렀다. 간병인 아줌마가 상수 형을 가리키며 “저분이 누구냐”고 묻자, 남편은 “내 제일 친한 친구”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름은 끝내 대지 못했다. 이내 형님 내외가 병실로 들어섰다. 아주버니를 보자 남편은 “큰형”이라며 이름까지 또렷이 불렀다. 하지만 제 형수는 알아보지 못했다.


잠시 반가운 기색을 보이던 남편은 곧 다시 귀를 닫은 듯 반응을 잃었다. 침대 머리맡에 몸을 기댄 채, 커튼으로 가려진 왼편만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마치 그쪽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문병 온 사람들도 말없이 앉아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형님은 발치에 서서 동생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러던 남편이 갑자기 고개를 정면으로 돌리더니, 다 쉰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우리 시동생 참 불쌍하다!”


뜻밖의 말에 형님은 속내를 들킨 듯 멋쩍게 웃어넘겼다. 제 형수를 몰라보면서도, 정작 형수의 속내만은 알아챈 걸까. 환자의 느닷없는 말 한마디에 병실의 공기가 잠시 얼어붙었다.


남편은 평소 제 형수를 무척 좋아했다. 아내 말은 흘려듣더라도 형수 말이라면 대꾸 정도는 하곤 했고, 제 큰형과의 대화보다 형수와 세상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더 편하게 여겼다. 조카의 총명함도 모두 형수 덕이라며 추켜세우곤 했다. 그런 형수였으니, 비록 얼굴은 못 알아보았어도 마음 어딘가로는 그 존재를 감지했던 모양이다.


병실을 나설 때쯤, 남편은 느닷없이 평론가의 자질을 발휘했다. 쉰 목소리로, 그러나 분명히 말했다.


“독한 선생님 가신다.”


초등학교 교사인 형수의 직업을 잊지 않고 기억해낸, 그 마지막 평이었다. 병색이 깊어가도 마음속 어딘가에는 여전히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눈이 남아 있는 것일까. 가족의 얼굴조차 가물가물해지는 순간에도 그는 한마디 말로 사람의 본질을 찌르고, 삶의 결을 짚어내듯 평을 남겼다.


형수는 웃으며 병실을 나섰다. 병에 잠식된 남편의 언어는 꺼지지 않는 정신의 불꽃이 스치듯 빛난 순간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남편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최후의 언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남은 자들에게는 짧은 한마디가, 그가 건넨 수많은 긴 문장보다 더 깊은 기억으로 각인될 것이다.

(당신이 떠나기 전 3월 중순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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