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했어요

by 인상파

수고했어요


간병인 아줌마가 며칠 전부터 오늘은 집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아무리 직업이라지만 밤낮으로 환자를 돌보며 병원생활을 이어가는 것은 예순을 훌쩍 넘긴 아줌마에게 큰 고역일 것이다. 오후 다섯 시쯤 돌아온다고 했으니, 그때까지는 내가 혼자 남편을 보살펴야 했다. 늘 아줌마의 손길을 믿고 의지해 온 터라,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심리적 부담이 밀려왔다. 젊은 시절 혼자 돼 남매를 키워냈다는 아줌마는 성격이 차분하고 조용해 남편과도 잘 맞았다. 환자와 간병인이 서로 맞지 않아 힘든 경우가 많은데, 아줌마는 남편과 호흡이 잘 맞아 환자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경제적 부담만 아니면 오래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이다.


오늘따라 남편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병색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내 눈에만 그런 것일까 싶었는데, 들어오는 간호사들마다 “얼굴이 좋아 보인다”고 환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아줌마가 없으니 괜스레 눈치 볼 일은 없어 덜 불편했다. 나는 남편과 가위바위보를 했다. 진 사람이 이긴 사람에게 뽀뽀를 해주자는 내기였다. 남편이 그 말을 온전히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결과는 내리 남편의 패배였지만, 뽀뽀는 내가 남편에게 건넸다. 차갑고 힘 빠진 입술이었지만, 그 위로는 여전히 부드러움이 남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면 늘 마음이 무거워진다. 남편이 잠들어 있으면 발걸음이 덜 어렵지만, 깨어 있을 때는 괜스레 미안하고 난감하다.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슬쩍 빠져나올 때도 있지만, 아픈 사람에게 거짓말까지 둘러대는 건, 괜스레 더 안쓰럽게만 느껴졌다. 언젠가부터는 있는 그대로 말하는 편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에는 눈을 말똥거리며 나를 보던 남편에게 집에 다녀와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는 쉰 목소리로 “다녀오라”고 했고, 이어서 “내가 딸아이 데리고 병원에 갈 거야”라며 엉뚱한 말을 했다. 때로는 집에 함께 가겠다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려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손등에 꽂힌 주사바늘과 폴대에 매달린 수액을 가리키며 “이거 다 맞고 주사바늘 뽑은 다음에 가야 해요”라고 설명했다. 그는 주사바늘이 꽂힌 손등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마치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는 내게 잘 가라며 하이파이브를 네댓 번이나 했다. 그 인사를 받고 나니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집에 가겠다고 인사를 건네자 남편이 낮게 말했다.


“수고했어요.”


순간, 가슴이 저릿했다. 아내를 알아보고 한 말이었다.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라, 내가 자기를 보살펴준 것에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병이 깊어도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힘은 남아 있는 것일까. 그 한마디가 가슴에 박히는 순간, 뜨거운 것이 눈시울을 훑고 지나갔다. 병실 문을 나서며 그 시선과 목소리를 오래 품었다.

(당신이 떠나기 전 3월 하순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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