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경을 헤매다

by 인상파

사경을 헤매다


남편에게 위기가 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눈에 총기가 돌고 얼굴에 생기가 돌아, 혹시 몸에 좋은 변화가 시작된 것은 아닐까 기대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회복의 조짐이 아니라, 마지막 불꽃처럼 남은 기운을 소진시키며 번져 나온 빛이었다.


오후 들어 열이 오르더니 남편은 고통스러워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섯 시를 넘어서는 심한 발작이 찾아왔다. 진정제를 맞자 잠시 멈추는 듯했지만, 이전처럼 깊은 혼곤한 잠에 빠져들지는 못했다. 몸은 끊임없이 이상 신호를 내보냈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손발이 경직되며 떨림이 이어졌다. 흰자위가 보이더니 다시 발작이 시작됐다.


간호사가 진정제를 더 투여했지만, 발작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결국 퇴근한 담당 의사에게 연락이 갔다. 의사가 달려오자, 마치 발작이 그를 알아보기라도 한 듯 서서히 진정되었다. 병실을 뒤흔들 만큼 요동치던 남편은 거짓말처럼 고요해졌다. 죽은 듯 잠든 얼굴이 낯설 만큼 평온했다.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어, 병실에서 자리가 날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집에서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향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의 발작도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었다. 이번 발작은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사경을 헤맨다”는 말은 아마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번에도 그는 가는 줄로만 알았다. 그와의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덮쳐왔고, 나는 반쯤 미쳐 울부짖었다. 어떻게든 살아서 못다 한 말을 들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남편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을 터였다. 두려움에 떨며 울먹이는 목소리가 오히려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병실의 다른 환자들에게도 민망한 일이었다. 곧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저녁 몇 시간이 몇십 년처럼 길었다. 그 몇 시간 동안 나는 다 살아버린 노파가 된 듯했다. 앞으로 남편은 이런 고통을 몇 번이나 더 겪어야 할까. 그리고 나는 그 곁에서 몇 번이나 더 이 광경을 지켜봐야 할까. 미치광이처럼 울부짖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다짐조차 버거웠다.


집에서는 전화가 여러 번 왔다. 귀가가 늦어지자 어머니가 아이들을 시켜 전화를 걸게 하신 것이다. 숨길 수도 없는 일이기에 딸아이에게 아빠 상태가 좋지 않다고 알렸다. 아이는 곧장 “아빠가 죽는 거야?” 하고 울먹였다. 그 말이 가슴을 찔렀다. 아이들의 불안을 달래줄 도리가 없었다. 통화 너머로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호통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병실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모두가 내 존재를 필요로 하는 듯했지만,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의사는 오늘 밤이 고비라며 잘 지켜보라고 했다. 발작이 다시 시작되고 약물로도 멈추지 않는다면 그것이 마지막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병실에 머물 수 없었다. 아이들이 엄마를 부르며 울고 있다는 사실이 발걸음을 옭아맸다. 간병인 아줌마에게 부탁을 하고, 급한 일이 생기면 연락을 달라 당부한 뒤 병원을 나섰다.


집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달려들어 엄마를 붙잡고 통곡했다. 초상집이 따로 없었다. 아이들은 울먹이며 아빠 상태를 묻고, “우린 괜찮으니까 얼른 아빠한테 가라”고 현관으로 등을 떠밀었다. 어머니도 집은 걱정 말고 가보라며 재촉했다. 나는 간병인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줌마는 “계속 자고 있으니, 내일 아침에 오라”고 했다.


잔뜩 조여 있던 긴장이 풀리자 몸에서 기둥 하나가 무너져 내리는 듯 힘이 빠졌다.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을 만큼 피로가 몰려왔다. 옷만 갈아입고 쓰러지듯 잠자리에 들었다. 눈앞에는 남편의 발작하던 모습이 아른거렸다. 아이들을 핑계로 남편 곁을 떠나온 것 같아 죄책감이 몰려왔다. 밤이 깊을수록 불길한 생각이 파도를 쳤다.


새벽같이 일어나 병원으로 갔다.

남편은 무사했다.

(당신이 떠나기 전 3월 하순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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