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by 인상파

막걸리


먹는 것도 없는 남편이 계속 설사를 해댄다. 기운이 달리는지 눈조차 뜨지를 못한다. 변을 못 본 지가 꽤 돼서 변비약을 먹였더니 설사가 멈추지 않는다. 이래저래 누워지내는 환자의 몸은 고통의 연속이다. 남편이 내리 잠만 자서 일찍 귀가했다.


어머니가 다시 술을 드러내놓고 드시기 시작했다. 아들이 건강할 때는 아들과 함께 식사 때 반주로 맥주를 정말 기분좋게 드셨는데 지금은 맥주는 드시지 않고 오로지 막걸리다. 멀쩡한 정신으로는 견딜 수 없으니 막걸리를 드시는 것일 게다. 알콜 기운으로 살아가신다. 오후 다섯 시가 안 됐는데 어머니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있다. 혀도 꼬여서 말씀이 시원찮다. 죄 많은 여자, 당신의 신세 한탄을 하신다.


저녁 식사시간, 국그릇 놓일 자리에는 물 컵에 따른 막걸리가 놓여있다. 이웃집 아줌마가 갖다 준 김밥에 컵 짜파게티로 저녁을 때운 아이들은 방으로 들어갔다. 식탁에는 며느리와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둘러앉았다. 어머니는 밥 대신 막걸리를 드신다. 막걸리를 쌀로 만들었으니 밥을 먹는 거나 마찬가지시란다. 막걸리를 드시는 어머니는 며느리와 남편이 식사하는 것을 지켜보신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밥이 넘어가냐고 묻고 있는 것 같다. 얼른 이 식사 시간이 끝났으면 좋겠다. 밥알이 목구멍을 막아버린 것 같다. 이런 불편한 심기로 밥을 먹다가는 딱 체하기 십상이다.


어머니는 요즘 자주 노여워하신다. 울적해하시고 눈물을 짜신다. 누구보다 고통스러운 이는 자신인데, 그 누구도 헤아려주지 않는다고 여기시는 듯했다. “며느리는 남편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으니 헤어지면 남이 되지만, 나는 엄마라 그렇지 않다”는 말씀이 뼈처럼 남았다. 맞는 말씀이다. 그러나 내게도 그 마음을 다 감당할 여유는 없었다. 며느리인 내가 어머니 마음을 헤아려야하건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 역시 무너져 내리고 있었으니까.


어머니가 결국 훌쩍이시며 눈물을 흘리신다. 눈을 마주치지 말아야지. 들어간 밥알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다. 자리를 뜨고 싶다. 그런 어머니를 못 본 척 나는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음식물을 집어넣는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수저질을 한다. 전혀 눈치를 채시지 못한 아버님은 떡만두 국물을 후륵후륵 드시며 시원해서 좋다고 하신다. 어머니가 막걸리를 컵에 따라 주무시는 방으로 갖고 들어가신다. 혼자 우시는 것도 괜찮다. 서로 얼싸안고 통곡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머니에게 막걸리는 끼니이자 심리적 안정제이다. 아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그 끔찍한 고통과 슬픔에서 조금은 빗겨날 수 있으니. 하지만 날이 밝으면 답답한 가슴 타령을 하시겠지. ‘가슴이 답답하여 숨을 쉴 수가 없다.’고 푹푹 한숨을 쉬시겠지.(당신이 떠나기 전 3월 하순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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