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파이브

by 인상파

하이파이브


어머님이 느즈막하게 일어나셔서 아침도 드시지 않고 집을 나섰다. 저리 드시지 않고 어쩌시려나 걱정스러웠다. 아들 병원에 들렀다가 본가로 가시겠다고 했는데, 대중교통을 타고 갈 만한 기력이 남아 있을까 싶었다. 아들이 중병에 걸린 뒤로 어머니는 동네분들을 만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셨다. 아들의 병이 마치 당신 탓인 양 죄책감에 시달리며, 사람들의 눈길이 두려워 바깥출입조차 삼가셨다. 하지만 오늘은 본가에 꼭 가셔야 했다. 혈압약과 신경안정제가 떨어져 근처 병원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나가시고 집안을 정리하는데, 간병인 아줌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순간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남편이 전화기를 달라 하여 내 번호를 눌렀다는 것이다. 세상에, 남편이 그 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다니! 사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핸드폰은 원래 남편의 것이었다. 남편이 입원하고 난 후부터 내가 대신 사용하고 있었으니, 그 번호를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다.


남편과의 통화가 얼마 만이던가. 재발하기 전 외출하던 그와 집 전화로 통화한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입원한 뒤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통화는 일방적이었다. 나는 어머님이 곧 병원에 도착할 거라는 것, 기분은 어떤지, 밥은 먹었는지 등을 쏟아냈다. 그러나 남편은 가만히 듣기만 했다. “보고 싶으면 지금 갈까요?”라고 물어도 대답이 없었다. 그때 옆에 있던 간병인 아줌마가 “천천히 와요.”라고 말하라 했고, 남편은 그대로 따라 했다. 그 한마디에 가슴이 뭉클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온 뒤에 병원을 찾았다. 아침에 전화 통화를 해서인지,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그래서였을까. 병실에서 마주한 남편의 상태도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내 마음의 무게로 하루하루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한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그날은 아이들만 집에 있어 다른 때보다 일찍 병원을 나서야 했다. 병실에 머무는 동안 남편은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자, 남편이 불쑥 손을 들어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잘 다녀오라”는 뜻일 터였다. 손바닥이 마주칠 때 느껴지는 힘, 그 손에 아직 생의 의지가 남아 있음을 나는 분명히 느꼈다.


그래, 이 정도면 아직 괜찮다. 그 작은 손짓 하나가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

(당신이 떠나기 전 3월 하순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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