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정류장
남편은 어젯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아침 9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잠든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간병인 아줌마와 나란히 좁은 간이침대에 앉아 있는 것도 불편해 집에서 가져온 신문을 들고 휴게실로 나왔다. 뇌압을 낮추는 주사액을 10시까지만 맞추고 잠그라고 확인까지 하고 나왔는데, 11시에 병실로 들어서니 주사액 팩은 이미 비어 있었다. 간병인 아줌마는 그것도 모르고 옆 침대 보호자가 부른 다른 간병인과 이야기에 열중해 있었다. 지난 환자 이야기며 간병비 얘기까지 이어가며 수다에 빠져 있었다.
입술 끝까지 올라온 말을 차마 내뱉지는 못했지만, 속에서는 화가 치밀었다. 사람이 둘이나 있으면서 주사 조절 하나 제대로 못 하다니. 이번에는 내가 발견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지, 이런 일이 이번만일까. 의심이 의심을 낳으며, 간병인을 바라보는 내 눈길이 달라졌다. 믿음이란 것이 이렇게 쉽게 금이 가는구나 싶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마침 하교 시간이 되어 고등학교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정류장으로 몰려왔다. 남학생들은 서너 명씩 흩어져 나타났고, 여학생들은 더 많은 수가 함께 어깨를 부딪치며 나타났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정류장은 갑자기 시장바닥처럼 시끌벅적했다. 그런데 그 소란스러움이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생기가 넘쳐나는 아이들의 소리는 소음이 아니라 새들이 지저귀는 것처럼 귀를 청량하게 했다.
나는 문득 그 아이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학창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그때도 나름대로 삶의 무게에 허덕였지만, 지금처럼 죽어가는 남편을 지켜봐야 하는 고통은 없었다. 책임져야 할 아이들도 없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교에 갇혀 지내며 스스로를 죄수처럼 여기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그 시절 나도 분명 저 아이들처럼,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말들을 종알거리며 이야기꽃을 피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누군가는 지금의 나처럼, 멀리서 추억과 회한을 겹쳐 보았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얼굴에 세월이 내려앉아 늙은이로 보이겠지만, 언젠가 나도 저 아이들처럼 수다 한 줌으로 주변을 환하게 만들던 존재였음을 믿고 싶다. 버스 한 대가 정류장을 스쳐 지나가자, 아까까지 정류장을 가득 채우던 활기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남은 것은 버스를 기다리며 멀거니 서 있는 아이들의 인내뿐이었다.
그 기다림의 풍경 앞에서 저 아이들은 저마다의 내일을 기다리고 있지만, 나는 오늘이라는 정류장에서 내일 없는 사람을 향해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기다림의 모양은 달라도, 우리는 모두 각자의 정류장에서 삶을 버티고 서 있는 존재일 뿐이었다.
(당신이 떠나기 전 4월 첫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