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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Sep 05. 2024

간병일기 74

폭식

폭식


아무것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뻥 뚫린 가슴으로 불어오는 휑한 바람을 막을 수가 없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이 마음을 나눌 누군가를, 이 바람을 막아줄 누군가를 떠올려보지만 마음에 가 닿는 사람이 없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보고 너그럽게 받아줄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너무 버거워 감당이 안 되는 마당에 어느 누가 돌덩어리 같은 마음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 싶은 것이다. 차라리 입을 다물자.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견디자.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위로가 되지 않은 것은 마음이 감옥이기 때문이다. 탈옥할 수 없는 처지이니 그 형벌을 달게 받자.


오늘 같은 날은 미친 듯이 잠자는 게 제격이다. 세상일 다 잊어버리고 죽은 듯이 잠을 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작년 가을 남편의 병세가 악화된 이후 잠다운 잠을 잊었다. 악몽에 시달리거나 남편에게 닥칠 죽음의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한 채 잠속에서도 그것이 재현되는 것을 목격해야했다. 요즘은 남편 병문안 가는 버스에서 잠깐 동안의 선잠이 오히려 잠자리에서보다 편안하고 머리를 개운하게 한다. ‘폭잠’은 이제 죽어서야 가능할지 모른다.


먹자. 속이 허하니 속을 채우자. 식탐도 아니고 폭식이다. 소화를 못시키는 우유까지 들이켰다. 몸통이 물건을 담는 자루 같다. 먹으면 먹을수록 머리는 둔해지고 병상에 누운 남편 생각은 멀리 달아나고 없다. 뇌염을 앓고 있는 아들을 둔 친구는 밤마다 소주를 마셔야 잠을 잘 수 있다고 한다. 아들 녀석이 경기라도 심하게 하는 날이면 뭐든 마구 먹어치워야 속이 조금 가라앉는다고도 했다. 심리적인 불안감을 폭식으로 해결하려는 몸의 욕구다.


오늘 나도 그 친구와 다르지 않다. 목구멍으로 게걸스럽게 음식이 들어간다. 탈이 날 작정하고 먹어대지 않는 이상 이렇게 무식하게 먹어댈 수 없다. 스스로가 경멸한 바를 실행하면서. 이겨낼 수 없을 때는 몸에 해를 가하는 것도 무모한 시간을 견뎌내는 방법이다.(2011년 4월 2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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