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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Sep 05. 2024

간병일기 75

슬픈 눈빛

슬픈 눈빛


아버님이 오전에 병원으로 가셨다. 나는 아이들 점심을 일찍 먹이고 나중에 갔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형님이 병실 간이침대에 앉아서 남편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주버니는 아버님을 우리 집에 모셔다 주러갔다고 한다. 남편은 어제 밤에도 잠을 설쳤다고 한다. 자는가 싶으면 눈을 뜨고 있고 눈을 뜨고 있는가 싶으면 머리를 좌우로 돌리며 뭐라고 혼잣말을 중얼댔다고 한다. 그리고 아침녘에는 발작이 와서 진정제를 맞았다. 주사를 맞고는 세 시간 정도 수면을 취했다고 하는데 사람이 축 늘어져 있었다.


진정제 주사 때문일까. 전에는 사람을 못 알아봐도 누군가 들어서면 이유없이 반기더니 오늘 병자는 오는 사람에게 무덤덤하다. 만사가 귀찮다는 듯 심드렁하다. 이름을 불러도 말을 걸어도 무반응이다. 잘 보면 잔뜩 골난 표정같기도 하다. 반응없는 사람을 두고 지켜보는 사람들도 잠잠했다.


형님 내외가 가시고 상수 형이 들어섰다. “성일이 눈빛이 오늘따라 슬퍼 보인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남편의 눈망울에 팔려간 송아지를 떠나보낸 어미 소의 슬픈 빛 같은 것이 배어있다. 인지력은 떨어져도 어찌 생사의 고통과 슬픔까지 모르기야 할까. 자신의 몸이 가리키는 지점이 어디인지를 모르기야 할까. 살아온 흔적이 지워지면서 그저 무화되고 있는 사실을 말이다.


오후 다섯 시쯤 셋째 언니가 두 아이를 데리고 병실로 들어왔다. 아이들이 아빠를 불러도, 마치 자기는 자식을 둔 적이 없는 사람이기라도 한 듯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세상의 문을 닫아건 사람 같다. 아빠라고 부르며 달려들던 아이들의 표정이 굳어진다. 아빠 상태가 왔다 갔다 하니 크게 마음 쓰지 말라고, 좀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다독였다. 아이들이라고 아빠의 상태를 모르지 않을 건데 왜 이리 혼자 속을 태우는 거냐.(2011년 4월 3일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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