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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Sep 06. 2024

간병일기 76

해독 불능의 언어

해독 불능의 언어


남편 맞은 편 아저씨가 중환자실로 내려간 후 그 자리를 팔순 넘은 뇌졸중 할아버지가 채웠다. 간병은 할아버지 아내되는 할머니가 하는데 할머니도 팔순이 넘었다. 150센티도 안 되는 작은 키에 소박한 몸피 그 어디에서 힘이 나와 할아버지를 간병하시는지 모르겠다. 간병을 하기보다는 간병을 받을 나이임에도 그 나이 연세의 노인들에 비해 깡다구가 느껴졌다. 간병인을 쓸 처지는 못 되고, 그렇다고 바쁘다는 핑계로 얼굴 내밀지도 않은 자식들에게 아쉬운 소리는 하기 싫어, 할머니는 몸소 할아버지를 돌보게 된 모양이다. 뭔가를 바라고 의존하는 마음이야말로 사람을 늙게 하는 것일 텐데 그런 점에서 할머니는 아직 늙지 않은 것 같았다. 젊은 사람처럼 할아버지의 기저귀를 척척 잘도 갈아내신다.


남편 침대 옆 자리의 위암 말기 환자는 완도에서 온 사람이다. 배가 있어 바다낚시를 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허리 통증이 너무 심해 정형외과를 다니며 물리치료를 받았는데 전혀 완화되는 기미가 없어 큰 병원에서 검사를 하게 되었다. 그때는 이미 암이 퍼질 대로 퍼져 손을 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암 진단을 받은 지는 6개월이 안 됐다. 그는 암성 통증이 심할 때면 그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부인에게 욕지거리를 해댄다. 그리고 죽어버리겠다며 몸에 꽂힌 주사 줄을 자르게 가위를 갖다 달라고 한다. 그도 여의치 않으면 목 근처에 꽂은 주사바늘을 죄다 잡아 뽑아버린다. 그러면 몇 번씩 호출된 간호사가 환자를 진정시키며 주사바늘을 꽂느라 애를 먹는다. 


그럴 때마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부인은 아저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글로 쓰라고 필기도구를 내민다. 통증에 시달리느라 먹지도 자지도 못한 환자에게 글 쓸 손아귀 힘이 남아있을 턱이 없다. 부인은 남편이 쓴 메모지를 혼자서 해독해보려하지만 전혀 감이 잡히지 않은지 내게 읽어보라고 메모지를 가리켰다. 괴발개발 적은 글씨는 무슨 암호같아서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하여 그 메모지는 병실 보호자나 간병인에게 차례 차례 돌아갔는데 아무도 뜻을 알아내지 못한다. 아저씨는 손아귀 힘이 없어 글씨를 끊었다 이었다 쓰는 게 아니라 자기만 아는 글자를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저씨가 적은 메모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병실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보았지만 해독 불능이다. 떠나려는 자와 남아 있는 자의 간극은 그토록 멀고 멀어 보였다.(2011년 4월 6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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