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서의 목욕
병실에서의 목욕
다른 병실이 한참 잠에 취해 있을 새벽 6시가 되면 이곳 병실은 간병인과 보호자들이 환자를 씻기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새벽부터 웬 수선이나 싶어 다른 병실 사람들이 구경을 왔다가 아연실색하기도 하고 새벽부터 우리 병실 사람들이 뜨거운 물을 다 써버린다고 불만을 품기도 하고 가끔은 간호실에 시끄럽다는 민원을 넣는 바람에 목욕이 중지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또 며칠이 지나면 잠잠하던 목욕이 재개된다. 하나의 의식처럼 새벽 6시에 환자의 몸을 씻기기 시작한 것은 부지런하고 깔끔을 떠는 조선족 아줌마 때문이다.
그녀는 쉰 초반인데 여든이 넘은 거구의 파키슨 병을 앓은 할아버지의 간병인이다. 할아버지가 까다롭기도 하고 거구여서 다른 간병인들은 몇 달 하다 그만두는데 그녀는 할아버지와 잘 맞는지 간병을 3년 넘게 하고 있다. 무슨 일이든 손발이 잘 맞는 조합이 있는데 사람을 상대하는 간병에서는 그 조합이 훨씬 중요해 보인다. 적응하기 나름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서로가 편해지는 단계까지 가지 못하면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환자도 간병인도 서로에게 스트레스가 되면 좋을 게 없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족 아줌마와 할아버지를 보면 둘이 죽이 참 잘 맞는다. 할아버지를 대하는 아줌마의 말투나 표정은 더할 나위없이 부드럽고 다정하며 그런 아줌마에게 반응하는 할아버지는 어린아이처럼 아줌마가 하자는 대로 잘 따른다. 가끔 며느리가 와서 아버님하며 불러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데 아줌마의 말에는 반응을 즉각 보인다. 24시간을 함께 하며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니 가족보다 더할 수밖에 없다. 목에 관을 삽입하여 음식을 투여해야하는 할아버지는 근육강직이 심해 침대에 누워만 지내고 외마디 소리를 지를 뿐 거의 말을 못 하신다. 그런 할아버지의 동작과 표정을 보고 아줌마는 할아버지가 원하는 바를 제깍 알아차린다.
아줌마가 새벽부터 일어나 할아버지를 씻기는 방식은 늘 정해져 있다. 일단 침대에 비닐을 깔고 할아버지 머리를 감긴다. 그런 다음 옷을 벗겨가며 연두색 때 타월로 가슴, 등, 팔다리 등을 박박 문지른다. 성치 않은 사람을 저렇게 함부로 해도 되나 싶게 할아버지를 다루면서 진땀을 뺀다. 아줌마의 지론인 즉, 누워있는 사람일수록 더 잘 씻겨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밥맛도 좋고 병색이 없어지고 사람 신수도 훤해진다나 뭐라나. 그 아줌마가 새벽부터 그렇게 유난을 떠니 같은 병실에 있는 다른 간병인이나 보호자도 그대로 누워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한 사람 두 사람 동참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새벽 6시가 되면 이 병실의 모든 환자가 몸을 맡기고 씻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게 됐다.
식물인간처럼 침대에 누워만 지내는 할아버지를 씻기고 나면 아줌마의 옷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다. 그러면 아줌마는 샤워실에서 몸을 씻고 입었던 옷을 빨아 침대 난간에 널고 아침밥이 올 때까지 간이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머리와 얼굴에 흐르던 번지르르한 기름기가 쏙 빠진 할아버지도 혈색 좋은 얼굴로 단정히 빗긴 머리를 하고 다시 잠이 든다.
나는 새벽에 일어나 남편 몸을 닦아준다고 꼼지락거리기는 하지만 그 아줌마처럼 열성적으로 씻기지 않는다. 밤새 두리번거리다가 새벽녘에야 겨우 잠든 사람을 씻기는 것은 부차적인 일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남편은 씻기기보다 재워야하는 사람이다. 잠들어 있는 사람을 놀라게 하여 발작이라도 일으키게 한다면 그게 더 큰 일이기 때문이다. 뜨거운 물에 수건을 적셔 몸을 돌려가며 가볍게 닦아주는 선에서 끝낸다.(2011년 5월 7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