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눈빛
잊을 수 없는 눈빛
병원에 도착하기 전 비가 쏟아졌다. 챙겨간 우산이 별 소용이 없었다. 젖은 채 병실로 들어갔는데 남편이 깨어 있다. 반갑다. 남편은 그저 자기 쪽으로 걸어들어가는 나를 응시할 뿐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먹기만 하면 토해서 남편은 이틀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먹지 못해 너무 기운이 떨어져 사람이 축 처졌다. 의사는 그런 환자에게 뉴케어 경관 유동식 반 캔만 일단 줘 보고 지켜보자고 했다. 다행히 토하지 않아 오늘 아침부터는 캔 하나가 한 끼 식사가 되었다. 먹을 게 뱃속으로 들어가서 그런지 눈에 생기가 돌았다.
우리 사이에 오갈만한 대화라는 것은 사람을 알아보는지 확인하는 정도의 수준이다. 내가 입을 귀에 갖다대고 ‘최성일 씨’하고 크게 부르니 ‘네’라고 대꾸한다. 마치 학생이 교사의 호명에 대답하는 것 같다. 내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모기만한 소리로 내 이름을 댄다. 흘리는 목소리와 입모양으로 겨우 내 이름으로 알아들었는데 그도 확실치는 않다.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운이 달리나 보다.
침대에 걸터앉아 남편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니 남편도 한없이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는다. 이 눈빛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눈동자가 움푹 꺼지는 날이 오더라도 이 선하고 슬픈 눈빛은 내 가슴에 살아남아 나를 지키는 등불이 되어 줄 것이다. 오늘 이 눈빛을 가슴에 걸자. 아무리 시련의 날들을 맞이하더라도 이 눈빛이 희망으로 나아가게 해 줄 것이니.
비, 그놈 참 줄기차게 내린다. 남편이 잠으로 빠져들자 살며시 병실을 빠져나왔다.(2011년 5월 10일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