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변으로 젖은 옷

by 인상파


소변으로 젖은 옷


의사는 가볍게 말하듯, 방광 청소를 하는 거라며 오늘부터 약물 식염수를 오줌 줄을 통해 들여보내라고 했다. 절반만 들어가게 하고, 나오는 소변 양을 봐서 잠가놓은 줄을 마저 풀어주라는 지시만 남기고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나는 오줌주머니만 신경 쓰고 있었다. 그런데 소변은 주머니로 모이지 않고, 줄이 끼워진 성기 부분으로 넘쳐 흘렀다. 남편의 기저귀며 환자복, 깔아놓은 신문, 침대커버까지 몽땅 젖어버렸다. 거기에 대변까지 보아버려 그야말로 대형공사가 되어버렸다.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마침 어머님과 아버님이 병실로 들어서셨다. 커튼을 치며 옷을 갈아입혀야 한다고 하자, 아버님은 곧장 병실 밖으로 나가셨다. 어머니와 마주 보고 남편의 옷을 벗기고 갈아입혔지만, 둘 다 해본 적 없는 일이라 몹시 서툴고 힘겨웠다. 다행히 맞은편 침대의 아주머니가 끙끙대는 우리를 보고 도와주어, 겨우 침대커버까지 정리할 수 있었다. 일을 마치고 숨이 차 헐떡이고 있는데, 어머니는 아픈 아들을 그 지경이 되도록 가만두었냐며 핀잔을 주셨다. 그리고는 가제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셨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 눈에 보이는 것은 그 순간의 광경뿐이었다. 그래서 며느리가 아들을 방치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보이는 대로 느끼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만, 내 속은 많이 상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차라리 모른 척 넘어가 주실 수는 없었을까. 이 상황에서 속 편한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어머니는 정말 내 속이 그렇게 편해 보였을까.


환자를 돌보는 일은 단순히 옷을 갈아입히는 수고만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두려움과 미안함, 초조와 안간힘이 겹겹이 쌓여 있다. 눈앞에 드러난 ‘늦음’은 사실 간신히 붙잡은 ‘버팀’일 수 있다. 그러나 밖에서 보는 이는 젖은 옷과 어지러운 침상만을 본다. 그래서 돌봄의 내막은 쉽게 오해된다. 어머니의 눈물 또한 원망만이 아니라 아픈 아들을 향한 안쓰러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울음은 내게 원망의 울림으로만 들려왔다. 같은 장면을 함께 보면서도, 해석의 자리는 이렇게 달랐다.


그날의 기억은 단순히 소변으로 젖은 옷을 갈아입히던 곤란함으로 남지 않았다. 더 오래 남은 것은, 돌봄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시선이 충돌하며 만들어낸 감정의 무게였다. 환자 곁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이는 보이지 않는 시간을 지탱하지만, 잠시 들른 이는 눈앞의 단면만 본다. 그 차이가 때로는 깊은 오해가 되어 돌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고립시킨다. 결국 돌봄이란 몸의 수고만이 아니라, 그 수고를 둘러싼 오해와 감정을 함께 견뎌내는 일이었다.(당신이 떠나기 전 5월 중순 어느 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