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 리모델링
입원해 있는 환자들을 그대로 둔 채 병실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때려 부수고 드릴을 박고 자르고 하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바로 위층에서 공사를 진행할 때는 머리가 돌기 일보 직전이었다. 멀쩡한 사람도 이렇게 괴로운데, 몸과 마음이 약해진 환자들은 오죽할까. 병 고치러 왔다가 오히려 병을 얻어갈 판이었다. 항의해도 이미 정해진 일이라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급기야는 환자들 앞으로 떡 한 조각을 돌리며 입막음을 시도했다. 환자의 고통을 달래기에는 너무 가볍고 성의없는 위로였다.
쫓아낼 수 없는 환자들을 두고 공사를 진행하는 방식은 이렇다. 한 층을 통째로 비워 공사를 끝내면, 그 아래층 환자들을 위로 올려보내는 것이다. 오늘은 2층 환자들이 3층으로 옮겨가는 날이었다. 자리 배정이 바뀌는 것도 아닌데, 침대와 짐을 끌고 간병인과 보호자들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서로 먼저 들어가려 아우성쳤다. 전쟁이라도 난 듯 몰려드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줄서기의 고질병이 병실 풍경 속에서도 되풀이됨을 새삼 확인했다.
잠시 소란이 가라앉고 엘리베이터가 한가해진 틈을 타 짐을 챙겨 누워 있는 남편을 침대째 끌고 나왔다. 그런데 남편은 아침부터 토하기 시작해 가슴 사진을 찍고 와서도 토했고, 결국 점심부터 금식에 들어가야 했다. 그런 상태의 몸을 침대에 눕혀 옮긴다는 것은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혹시라도 기도로 토사물이 들어가면, 발작이라도 일어나면 어쩌나. 침대를 밀어낼 때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새 병실은 창이 튼튼하고 깔끔해 보였다. 그러나 공사 특유의 마감재 냄새가 코를 찌르고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다. 흰 벽과 반짝이는 바닥이 주는 청결감보다, 코끝에 맴도는 이 냄새가 더 크게 다가왔다. 심신이 피폐해졌다.
생각해보면 삶이란 언제나 이와 비슷하다. 더 나은 것을 얻기 위해 기꺼이 감내해야 하는 소음과 냄새, 새로움 속에 깃든 또 다른 고통. 병실은 달라졌지만, 환자의 고통은 여전하고, 보호자의 불안도 사라지지 않는다. 겉모습은 새로워졌어도 인간의 고통은 여전히 낡은 자리에 남아 있다. 리모델링의 반짝임은 언젠가 빛이 바래겠지만, 이 시간을 견디며 남는 건 고통을 함께 감내한 기억일 것이다.
삶의 고통은 늘 다른 얼굴을 하고 찾아온다. 소음으로, 냄새로, 혹은 불안으로. 그러나 그 고통을 견디며 살아내는 것이 바로 인간의 몫일지 모른다. 오늘 내가 끌고 나온 것은 단순히 남편이 누운 침대가 아니라, ‘살아 있음’이 지닌 무거운 짐이었다. 그리고 그 짐은 새로 칠해진 병실 벽보다 훨씬 오래, 내 마음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당신이 떠나기 전 5월 초순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