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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Sep 11. 2024

간병일기 82

어린이날에

어린이날에


어린이날이다. 기념일이 찾아올 때마다 방송에서는 호들갑을 떨어댄다. 가만있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다. 기념일을 꼭 챙겨야하는가. 그날이 그날로 조용히 지나가고 싶다. 특히 남편이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맞이하는 어린이날은 조금 버겁다. 무신경하게 지나치고 싶지만 틀어놓은 텔레비전에서는 어린이날이라고 사람을 가만두지를 않는다. 심기가 불편하다. 아이들이 신경 쓰인다. 


아빠는 병상에 누워있고 엄마는 그 아빠를 간병하러 병원에 와 있다.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와 잘 지내야할 터인데, 한숨 쉬며 눈물 짜는 할머니 눈치 보느라 기죽어 지내지는 않으려는지. 남편 옆에 있어도 집에 있는 아이들 걱정하느라 편치 않은 마음. 하지만 아이들도 철없이 어린이날 타령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지난주부터 남편을 간병하고 있다. 간병인 아줌마와 나눠서 간병을 하기로 했다. 내가 간병하는 요일은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2박 3일이다. 첫날에는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 쓰느라 밤을 꼬박 샜다. 낮에는 남편이 자는 틈틈이 보호자 간이침대에 누워 잠깐잠깐 눈을 붙이며 버텼다. 몸이 붕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고 우울감이 밀려왔다. 간병하는 날이면 어머니가 병원으로 오셔서 아들 얼굴을 보고 돌아가셨다. 간병인이 있을 때는 아들을 보러오지 않고 아들 소식을 며느리에게서 들으시더니 아들 옆에 며느리만 있으니 마음 내기가 더 쉬웠던 모양이다. 김밥을 사 오셔서 같이 나눠먹고 남편 기저귀 가는 것도 도와주셔서 수월하게 해치울 수 있었다.


일주일 사이, 남편의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인지력도 거의 없다. 누에가 고치를 틀듯 남편이 제 몸을 고치 삼아 제 안으로 침잠해 드는 것 같다. 누에야 나방이 되려고 침잠하겠지만 남편의 그것은 무덤으로 나아가는 길로만 보인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끝만 보고 달리고 있다. (2011년 5월 5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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