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에
어린이날이다. 기념일이 돌아올 때마다 방송은 호들갑을 떨며 들뜨기만 한다. 그럴수록 가만있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은 괜히 심란해진다. 기념일을 꼭 챙겨야 하는 것일까. 나로서는 그저 그날이 그날로 조용히 흘러가 주었으면 싶다. 특히 남편이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맞이하는 어린이날은 더욱 버겁다. 무심히 지나치고 싶어도, 틀어놓은 텔레비전은 끊임없이 어린이날을 외쳐대며 사람을 놓아주지 않는다. 아이들 생각이 자꾸 걸린다.
아빠는 병상에 누워 있고, 엄마는 그 아빠 곁을 지키느라 병원에 와 있다. 남은 아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와 잘 지내야 할 터인데, 눈물 짓는 할머니 곁에서 기죽어 지내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 앞선다. 남편 옆에 앉아 있어도 집에 있는 아이들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들도 지금은 철없이 어린이날 타령을 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 만큼 자랐으리라.
지난주부터 나는 간병을 맡았다. 간병인 아줌마와 나누어 내가 맡는 날은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2박 3일이다. 첫날은 남편의 숨결 하나, 몸짓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서서 밤을 꼬박 새웠다. 낮에는 남편이 잠들면 보호자 간이침대에 몸을 눕혀 잠깐잠깐 눈을 붙이며 버텼다. 몸은 붕 떠다니는 것 같았고, 현실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우울감이 물밀듯 밀려왔다.
간병하는 날이면 어머니가 병원으로 오셨다. 간병인이 있을 때는 차마 아들 곁으로 들어오지 못하시고 며느리에게 소식을 묻기만 하셨지만, 아들 옆에 내가 있는 날이면 용기를 내어 병실 문을 여셨다. 김밥을 사와 함께 나누고, 남편 기저귀를 가는 일도 도와주셨다. 그런 어머니가 내게는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불과 일주일 사이, 남편의 체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인지력도 거의 사라졌다. 누에가 고치를 틀듯 남편은 제 몸을 감싸 안으며 안으로 안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누에는 나방이 되기 위해 고치를 짓겠지만, 남편의 침잠은 오직 무덤으로 이어지는 길일 뿐이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끝만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다. 기념일의 들뜬 목소리는 멀리서 울려오는데, 내 앞에는 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모두가 내일을 꿈꾸는 날, 나는 내일을 기다릴 수 없는 오늘을 살고 있다.
(당신이 떠나기 전 5월 어린이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