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상 입은 아들
어릴 때부터 폭우가 쏟아지면 세상이 개벽이라도 될 것 같아 괜스레 마음이 들뜨곤 했다. 오늘 날씨도 그랬다. 시커먼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더니 낮은 하늘 아래로 장대비가 쏟아졌다. 시원하게 내리퍼붓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지나가는 소나기였는지 이내 그쳤다. 좋다 말았다.
언니가 집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고 병원에 가자고 했다. 아들 녀석은 이모가 집에 와서 신이 난 모양이었다. 언니는 커피를 마시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머리카락을 줍겠다고 부엌문 가장자리에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식탁에 내려놓고 주웠어도 됐을 텐데. 녀석은 바닥을 뒹굴며 발차기를 하며 놀다가 그만 이모가 내려놓은 커피잔을 건드리고 말았다. 커피잔이 넘어지면서 뜨거운 커피물이 아이 발등으로 쏟아졌다. 아이는 뜨거움과 통증에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나도 돌발적인 상황에 놀랐다. 양말을 벗겨 상태를 확인하니 발등이 시뻘겋게 부어오르고 물집이 잡혀 있었다.
그런데 아이는 그때부터 이상한 말을 내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여덟 살짜리 꼬마가, 더욱이 내 아들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내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벌을 받아야 하느냐.” 놀다가 부주의로 커피물을 엎질러 발등에 화상을 좀 입었기로서니, 그걸 죄와 벌로 연결시키다니. 그 어린게 도대체 그런 말을 어디서 배운 것일까.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울고 있는 아이 치료부터 해야 해서 언니 차를 타고 피부과로 달려갔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해서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차례를 기다리면서 병원이 떠내려가라 울어대니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상당히 신경 쓰였다. ‘좀 적당히 하지’ 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더니 아이는 엄마가 제 마음을 몰라줘 서러운지 더 크게 울었다. 앞사람의 양보로 아이가 먼저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의사는 아이의 발을 살펴보며 죽을 병은 아니라고, 치료하면 아프지 않을 거라고 했다. 의사의 말에 안심이 됐는지 아이의 울음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런데 병원을 나와 약국으로 들어서자 아이는 치료 부위가 아픈지 또 다시 그 ‘죄와 벌’을 들먹이며 울어댔다. 아무리 철이 없어도 그렇지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지각은 있을 텐데, 여전히 큰 소리로 울어대는 모습을 보니 웃음마저 나왔다. 화상도 흉터가 남을 만큼 중한 것은 아니라는데 아이의 통증은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약사는 아이가 그렇게 소란을 피우는 것이 궁금했는지 이유를 물었다. 이유를 듣고는 “나중에 크게 될 아이겠네요” 하고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나는 약사의 말에 한 번 더 실소했다.
아들은 아프다고 난리인데, 엄마라는 사람은 그 고통에 동조하지 못하고 엄살이라고 여긴 면이 있었다. 더욱이 쪼끄만 녀석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노인네의 신세 한탄처럼 들려 웃기기도 했다. 웃자. 여덟 살 먹은 아이의 입에서 그런 희한한 말이 터져 나올 줄이야. 세상 더 살아볼 일이다. 웃고 말자. 발등 화상 입었다고 죽기야 하겠는가.
그러나 돌아서면서 내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무거워졌다. 아이의 입에서 나온 “죄와 벌”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이 집안의 공기를 먼저 배운 탓일지도 모른다. 제 할머니의 죄많은 여자 타령도 한몫했을 터. 슬픔과 고통, 눈치와 기도 같은 것들이 아이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언어가 되기도 했겠지. 어린 마음에 깃든 그 문장이 내게 한참을 따라왔다. 웃으며 넘겼지만, 그 말이 내 속을 오래 울렸다.
(당신이 떠나기 전 4월 마지막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