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일기 90

간병하는 날

간병하는 날

남편을 간병하는 날은 몸이 두 개로 쪼개진 느낌이다. 몸은 남편 곁에 있지만 마음은 집에 있는 아이들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이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큰아이는툭하면 전화를 걸어 할머니가 운다느니 야단을 친다느니 하면서 우는 목소리를 내는데 그럴 때면 마음이 심란하기 짝이 없다. 분리불안증이 있는 아이의 마음을 달랠 길은 엄마가 집으로 달려가는 것이지만 그게 여의치 않으니 애가 탈 뿐이다. 도리 없다. 간병 끝날 때까지 잘 참고 있으면 아이가 평소 갖고 싶었던 물건을 사주겠노라고 제안한다. 울먹 울먹하던 아이는 엄마의 제안이 마음에 들었는지 전화를 끊었다.

남편을 간병하는 날이면 내 모든 감각의 촉수가 남편을 향한다.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쓰다 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어졌지만 그래도 아직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어디냐. 종일 병실에 있으면 울적하기도 하지만 울적할 새가 없어 울적할 수 없다. 기저귀를 갈고, 얼굴과 머리에 피부약을 발라주고, 깨어 있으면 말동무를 해주고, 끼니때가 되면 콧줄을 통해 주사기로 물, 캔 유동식, 약을 먹인다. 시간 나는 대로 팔다리를 주무르고, 가늘어진 핏줄로 주사액이 잘 들어가는지를 체크하고, 욕창이 생기지 않게 수시로 체위변경을 한다. 뇌압이 높아져 4시간마다 들어가는 주사약이 잘 들어가는지 확인하는 것도 필수다.

텔레비젼도 꺼진 밤 10시 이후, 환자들의 가래 끓은 소리나 부스럭거리는 소리, 간호사들의 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간이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몸이 고단하여 잠속으로 빠져들고 싶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남편이 부스럭거리거나 웅얼대기만 해도 발작이 일어난 줄 알고 깜짝 놀라 사람을 살피게 된다. 일어나 서성이다가 눕지는 못하고 앉아 있기가 다반사. 그러다가 앉은 채로 까무룩 잠이 들기도 하는데 그걸 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악몽이다. 내 몸이 바다에 둥둥 떠다니고 있다. 꿈에서 내가 죽어 있는 나를 지켜보고 있다. 몸이 고단하여 마음이 어지러웠던 것일까.( 2011년 5월 19일 목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