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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Sep 17. 2024

간병일기 89

고종석 선생님

고종석 선생님


남편은 평소 고종석 선생님의 박식과 인간됨을 흠모했다. 남편은 고종석 선생님을 우리 시대의 사상가로 보았다. 그를 인문서 저자, 기자, 소설가, 언어학자, 정확한 한국어 사용자, 번역가, 정치 평론인 등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로 평가하기도 했다. 병이 재발하기 전에 그분을 인터뷰하고 돌아와서는 그분의 진정성에 더 감동을 받은 것 같았다. 어느 저녁 술자리에서 그분은 남편에게 술자리에 나올 수 있냐는 전화를 하시기도 했다. 그때는 남편의 병이 재발하여 술자리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인연이 있기에 나는 남편과 그분의 만남을 주선해주고 싶었다.


남편 핸드폰에 저장된 그분 핸드폰 번호는 그 사이에 바뀌었는지 결번이라는 음성 메시지가 새어나왔다. 번호를 어떻게든 알아내고 싶어 고종석 독자모임 운영자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선생님의 핸드폰 번호를 문의했다. 다행히 번호를 알려줬다. 


선생님께  남편 소식을 전해드렸더니 그 다음날로 문병을 오셨다. 바로 오늘이다. 아무 연락 없이 갑자기 오셨다. 병원에 있다가 학교가 끝났을 아이들을 챙기려고 집에 와 있는 사이에 오셨던 모양이다. 집안을 치우고 있는데 선생님이 병원에 와 있다는 문자를 보내셨다. 바쁘신 분에게 괜히 연락을 하여 폐를 끼친 것 같은 죄송스러움이 밀려왔지만 일단은는 택시를 집어타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선생님은 남편 침대 곁에 놓인 의자에서 잠을 자고 있는 사람을 지켜보고 계셨다. 남편이 아까는 눈을 뜨기도 했는데 사람을 알아보지는 못하더라고 했다. 선생님은 남편과 나눴던 얘기를 하시며 아이들의 나이를 물었다. 큰아이가 5학년이고 작은 아이가 1학년이라고 했더니 큰아이는 한창 예민한 나이라 죽음에 대해 알 것은 알고 있을 거라며 아이를 걱정하셨다. 환자 옆에 그토록 오래 앉아서 응시하는 분은 선생님이 처음이었다. 선생님을 버스 정류장까지 바래다 드렸다. 저 멀리서 기다리던 버스가 달려오자 내게 힘을 내시라며 손을 잡아 주셨다.


나는 떠나는 버스 꽁무니를 오래 지켜봤다. 잠깐동안이나마 선생님을 뵈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었는데 다시 정류장에 혼자 남게 되자 허허로움이 밀려왔다.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만나게도 되는 것이 인생사다. 그래 그분의 말씀대로 힘을 내야지. 이 상황에서 내가 힘을 내지 않으면 집안이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 돌봐야할 아이들도 있지 않은가.(2011년 5월 17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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