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하는 날
남편을 간병하는 날은 몸이 두 개로 쪼개진 것 같다.
하나는 병실에, 남편의 곁에 붙박혀 있지만
또 하나는 집에 남겨진 아이들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고 있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큰아이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할머니가 울었다느니, 야단을 맞았다느니 하면서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손이 떨린다.
그럴 때마다 마음은 이미 집으로 뛰어가 있지만
몸은 병실을 떠날 수 없다.
아이의 분리불안증을 달랠 길은
결국 엄마가 집으로 달려가는 것인데
그게 여의치 않으니 애가 탈 뿐이다.
“조금만 더 참자. 간병이 끝날 때까지 잘 있으면
평소 갖고 싶던 물건을 사줄게.”
그렇게 제안하면 울먹이던 아이의 목소리가
조금은 진정되고 전화를 끊는다.
그제야 가슴속에 눌려있던 숨을 내쉰다.
남편을 간병하는 날이면
내 모든 감각의 촉수가 남편을 향한다.
그의 숨소리, 미세한 몸짓,
가늘어진 핏줄과 푸른 멍까지
눈으로, 손으로, 귀로 다 받아낸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형편없어졌지만
그래도 아직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종일 병실에 있으면 울적하지만
울적할 새가 없어 울적할 수 없다.
기저귀를 갈고, 얼굴과 머리에 피부약을 발라주고,
깨어 있을 때는 말동무가 되어주고,
끼니가 되면 콧줄을 통해 주사기로
물과 유동식, 약을 조금씩 흘려보낸다.
시간 나는 대로 가늘어진 팔다리를 주무르고,
주사액이 핏줄로 잘 스며드는지 확인하며,
욕창이 생기지 않게 수시로 체위를 바꾸어준다.
뇌압을 낮추는 약이 4시간마다 들어가기 때문에
그때마다 한 번 더 확인하는 일도 잊지 않는다.
밤 10시가 넘어 텔레비전도 꺼진 병실에는
환자들의 가래 끓는 소리,
복도를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
간이침대에 누워 잠을 청해보지만
몸이 고단한 만큼 감각은 더 예민해져
잠이 오지 않는다.
남편이 웅얼거리거나 손끝을 스치기만 해도
발작이 일어난 줄 알고 벌떡 일어난다.
누워 있다가도 이내 일어나 서성이고,
결국 앉은 채로 고개를 떨군다.
그렇게 앉은 채로 까무룩 잠이 들기도 하지만
그게 과연 잠일까. 악몽 같다.
꿈속에서 나는 바다에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멀리서 나 자신이 죽어 있는 모습을
내가 지켜보고 있었다.
깊이 피로한 몸이 마음까지
어지럽게 만들었던 것일까.
간병하는 날은 이렇게 몸과 마음이
모두 다른 곳에 걸려 있으면서도
한곳으로 꾹 눌려 있는 날이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남편 곁에 앉아
그의 미약한 숨결을 듣는다.
그것이 내 하루를 버티게 하는
유일한 힘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떠나기 전 5월 중순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