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바구니
꽃바구니의 꽃이 어느새 시들어 있었다. 어버이날에 맞추어 문병 온 지인이 정성껏 준비해 가져왔던 것이다. 아마도 남편에게는 다시는 맞이할 수 없을 어버이날이라, 그 마음을 담아온 것이리라. 창가에 놓였을 때만 해도 병실 분위기가 잠시 환해졌다. 그러나 내 마음은 그만큼 환해지지 않았다. 뿌리가 잘린 꽃은 잠깐의 빛과 향기를 내보이다 곧 시들고 만다. 잘린 꽃처럼 허망한 것이 있을까. 꽃으로서는 끔찍한 일이요, 그 앞에 선 나로서도 불편한 장면이었다. 환자 곁에 놓인 꽃바구니는 자꾸만 상여 위에 얹힌 조화를 떠올리게 했다.
죽음을 받아놓은 사람 앞에 놓인 꽃다발이나 꽃바구니는 어쩐지 잔인하다. 뿌리 없는 꽃은 환자를 닮아가듯 서서히 시들어간다. 생의 열망은 잠시 흔들리며 빛나지만, 곧 병실에 감도는 죽음의 냄새에 삼켜지고 만다. 물을 갈아주어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꽃이 시들어 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앙상하게 말라가는 꽃대를 바구니에서 꺼내 쓰레기통에 던져 넣으며, 나는 문득 이 병실에서 이미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곳에서는 병세가 나아져 퇴원하는 사람보다, 마지막을 맞이하고 떠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 생각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환자에게 꽃은 생명을 응원하는 표식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병실에서 꽃은 더 이상 희망의 상징이 아니었다. 화사하게 피어 있는 순간조차, 뿌리 잘린 생은 오래 가지 못할 것임을 이미 예고하고 있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 앞에 놓인 꽃은 어쩌면 그 자체로 예언 같았다. 화사함 속에 스민 무상함, 생의 불씨가 꺼져가는 속도와 닮아 있었다.
호전될 가능성이 있는 환자에게는 꽃이 위로가 될 수 있겠지만, 임종을 앞둔 이에게 꽃은 차라리 무심한 잔혹이다. 꽃의 운명이 환자의 운명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시들어 가는 꽃에서 곡소리마저 들여오는 것 같았다. 삶을 향한 마지막 몸짓이자, 동시에 무너져가는 생의 거울처럼 여겨졌다.
그럼에도 나는 그 꽃바구니를 쉽게 미워할 수 없었다. 누군가의 정성과 마음이 거기 담겨 있었으니.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마음 덕분에 병실은 한순간 환해졌고, 남편은 의식하지 못했을지라도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해주고 있다는 증거로 곁에 놓였으니. 결국 꽃은 시들었고, 쓰레기통에 버려졌지만, 그 마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병실 한켠에서 꽃이 시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다시금 생각한다. 삶이란 결국 뿌리 없이 오래 버틸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그러나 그 짧은 시간의 빛과 향기조차 누군가에게는 깊은 위로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꽃은 사라졌지만, 그 순간만큼은 분명 우리 곁에 있었다.(당신이 떠나기 전 5월 중순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