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어제 저녁, 아이들과 밥을 먹는데 문득 이상한 기운이 집 안을 스쳤다.
관문이 ‘철컥’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뒤이어 당신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렸다.
“옥아, 나 왔어!”
순간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 이제 왔어요” 하며 당신을 맞으러 달려갈 뻔했다.
그러다 멈춰 섰다. 아, 아니지. 당신은 여기 없지.
나는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았다. 밥숟가락이 손가락 사이에서 흘러내렸다.
딸아이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엄마, 왜 그래?”
“아니야. 잘못 들은 것 같아.”
나는 웃어 보였지만, 그 웃음은 내 몸에 붙지 않았다.
정신이 몸을 떠나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보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보내지 못하는 마음이 이런 환청을 만들어내는 걸까.
그래, 당신은 가끔 서울 나들이를 갔지.
외출하고 돌아오면 현관문에서 가족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인쯔야, 스쯔야, 옥아… 그 소리가 지금도 귀에 선하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신발을 정리하곤 했지.
시계, 핸드폰, 지갑, 손수건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나가면 힘들어, 집이 제일이구나” 하고 말하던 당신.
그때 당신은 배고픔도 잊은 채 소파에 앉아
바깥에서 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내가 “밥 식는다”고 재촉하면 “천천히 먹어도 된다”며 웃었고,
식탁으로 오기 전에는 꼭 책으로 둘러싸인 거실의 서가를 훑곤 했다.
책장을 쓰다듬는 그 손길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제는 그런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목구멍 깊숙이 뜨거운 것이 차오른다.
당신이 지금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다.
하지만 당신은 병원에 누워 있다.
미안해요. 여보!
당신 빼고 나와 아이들만 여기 있어서.
말은 안 하지만, 당신도 얼마나 집으로 돌아오고 싶을지.
집안을 둘러보면 사방이 당신을 닮은 책뿐이다.
책을 사고 모으고 정리하는 것이 당신의 기쁨이었는데,
이제 이 책들이 무슨 소용일까.
떠나려는 당신을 붙잡지 못하는 나,
당신이 그랬듯 책등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삼키는 나.
내일 병원에 가면 당신의 눈을 오래오래 들여다보렵니다.
그 속에서 당신의 빛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찾아보렵니다.
(당신이 떠나기 전 5월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