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힘을 내줘
여보 힘을 내줘
궂은 날씨 탓일까. 울적하고 불안하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마음이란 것이 손에 잡히는 것이라면 좋겠다. 그러면 잡아서 아무도 보지 못하게 꽁꽁 숨겨버릴 텐데. 십자가나 되듯 자신을 버겁게 짊어 매고있는 표정을 들키고 싶지 않다. 마음이란 것이 손에 잡히는 것이라면 밀가루 주무르듯 조물딱거렸다가 치댔다가 하면서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치고 싶다.
여보, 내 마음이 왜 이럴까. 당신은 병상에 누워 힘겹게 버티고 있건만 나는 왜 이리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불안에 떨고 있을까. 당신을 위해서라도 이러면 안 되는데.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하는데. 휘청거리고 있으니 기도하는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아직 당신과 같은 하늘 아래에 있는데 나는 무엇이 두려워 이토록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것일까. 당신에게 뻗쳐오는 먹구름이 오늘따라 더 두터워 보인다.
그런 당신을 들여다보다가 당신이 내게 했던 말이 퍼뜩 떠올랐어. 문장은 되니까 간절하게 글을 써보라고 했던 것이. 아이들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하며 살았던 경험이 녹록했던 것은 아니니 그걸 한 번 써보라고 했던 당신의 그 말을 오늘 가슴에 새긴다. 그래 이런 날일수록 뭔가를 붙잡고 매달리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겠지. 쓸 수 있다는 그 생각이 나를 삶 쪽으로 끌고 갈 수도 있을 것이니.
당신도 알다시피 나 어줍잖은 허무주의자여서 자주 넘어지고 회의하고 포기하고 그러잖아. 그럴 때마다 당신이 응원해 줘. 당신이 응원하는 소리를 듣고 다시 기운을 낼게. 생각의 잔가지를 쳐내고 용기 있게 실행하면서 살아갈게. 시간이 없다고, 피곤하다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을게.
그런데 지금 멍하니 그저 흘러가는 시간만 축내고 있는 나를 보게 돼. 게으른 성격 때문이야.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는 나약한 의지 때문이야. 당신 이런 날 보고 그랬지? 아직 멀었다. 그래, 지금도 멀고멀었어. 하지만 이제는 해 볼 거야. 그러니 나를 지켜봐 줘. 그 아득한 정신으로라도 우리는 통한다고 믿어. 여보, 제발 힘을 내줘.(2011년 5월 23일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