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미안해요
어제 저녁은 뭔가에 씌인 느낌이었어.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있는데 누군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났어. 뒤이어 당신의 목소리가 들렸지. “옥아, 나 왔어!” 반사적으로 현관문을 향해 “응, 이제 왔어요.”하며 당신을 맞으러 달려갈 뻔했어. 일어서다 말고 머뭇거리며 아, 아니지 하며 의자에 주저앉았지. 밥을 먹던 딸아이가 엄마 왜 그러냐고 물었어. 아니라고 잘못 들은 것 같아, 하고 말았지. 밥을 먹다가 무슨 생각에 빠져있었는지 모르겠어. 정신이 몸을 떠나 허공에서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 같아. 보내야한다는 것을 알면서 보내지 못하는 마음이 그런 환청을 부른 것일까.
그래, 당신은 가끔 서울 나들이를 갔지. 외출하고 돌아오는 당신이 생각나. 인쯔야, 스쯔야, 옥아 하면서 가족들 모두의 애칭을 부르며 현관문을 들어섰지. 현관에서 곧바로 들어서지 않고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신발들을 정리하고 거실로 들어서서는 시계며 핸드폰, 지갑, 손수건 등을 책상 위에 올려놨지. "나가면 힘들어, 집이 제일이구나" 하며 집으로 돌아온 안도감에 소파 깊숙이 엉덩이를 밀어넣었지. 배고픔도 잊은 채 소파에 앉아 한참을 바깥에서 들은 이런저런 소식을 전했지. 차려놓은 밥 식는다고 식사를 재촉하면 천천히 먹어도 된다며 일어서 책으로 둘러싸인 거실의 서가를 훑곤 했지. 이제 다시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나려고 해.
당신이 지금이라도 꼭 집으로 돌아올 것만 같은데, 당신은 병원에 누워있으니. 미안해요. 나와 아이들만 여기 있어서. 말은 안 해도 당신, 얼마나 집으로 돌아오고 싶을지. 집안을 둘러보면 사방이 당신을 생각나게 하는 책뿐이야. 이 책을 사고 모우고 정리하는 것이 당신의 기쁨이기도 했는데, 이것들이 이제는 무슨 소용인가요. 떠나려는 당신을 붙잡지 못해 당신이나 되듯, 당신이 그랬듯, 책 등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삼킵니다. 낼 병원가서는 당신의 눈을 오래 오래 들여다보렵니다.( 2011년 5월 24일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