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간 위로의 순간
남편은 평소 한 사상가를 깊이 흠모했다. 그를 단순히 인문서 저자나 기자, 소설가로만 본 것이 아니었다. 언어학자이자 번역가, 정치평론가, 정확한 한국어 사용자이자 우리 시대의 지성으로 남편은 늘 평가했다. 병이 재발하기 전, 그분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돌아왔을 때 남편은 그분의 진정성과 곧은 태도에 크게 감동을 받은 듯했다. 술자리로 불러주신 적도 있었지만 이미 병세가 깊어진 탓에 함께하지 못했다. 남편의 마음 한켠에 남아 있던 아쉬움은 아내로서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래서 마지막으로라도 두 사람의 만남을 이어주고 싶었다.
번호가 바뀌어 연락이 닿지 않았을 때에는 조급함이 앞섰다. 다행히 독자모임을 통해 번호를 전해 들을 수 있었고, 용기를 내어 소식을 전했다. 뜻밖에도 다음 날, 아무 예고도 없이 그는 병실로 찾아왔다. 나는 아이들을 챙기기 위해 잠시 집에 머물던 중이었다. 집안을 치우던 내게 도착한 문자는 선생님이 이미 남편 곁에 앉아 있다는 소식이었다. 순간 죄송스러움이 물밀듯 다가왔다. 바쁜 이의 시간을 빼앗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병실에 들어섰을 때, 선생님은 남편의 침상 곁에서 묵묵히 앉아 계셨다. 눈을 뜨기도 하지만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남편을 그저 조용히 바라보고 계셨다.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오래 앉아 응시하는 그 시선 자체가 깊은 위로처럼 다가왔다. 그는 아이들의 나이를 물었고, 특히 사춘기에 접어든 큰아이가 겪을 죽음의 그림자에 대해 염려해주었다. 한 생이 꺼져가는 자리에, 그처럼 오래 머무는 사람을 나는 처음 보았다.
잠시 후 버스 정류장까지 함께 걸어 나왔다. 떠나는 버스를 기다리다, 선생님은 내 손을 잡으며 힘을 내라고 짧게 당부했다. 그 손길은 길게 남았다. 버스가 멀어지고, 다시 정류장에 혼자 남았을 때, 순간 허허로움이 몰려왔지만 마음 한편이 분명 달라져 있었다.
삶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다. 잠시 스쳐간 만남일지라도 남는 울림이 있다. 그날의 위로는 오래도록 내 마음에 새겨졌다. 끝내 떠나가는 이를 지키고, 남은 시간을 감당하는 일은 내 몫이었으나, 그 짧은 손길 하나가 내 무너진 마음을 다시 붙들어 주었다. 누군가를 통해 삶의 기운을 나눠 받는 일이, 결국 인간이 인간을 지탱하는 방식임을 그날 새삼 깨달았다.(당신이 떠나기 전 5월 중순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