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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Sep 16. 2024

간병일기 88

꽃바구니

꽃바구니


꽃바구니의 꽃이 시들었다. 어버이날인 지난 일요일 문병을 왔던 지인이 가져왔던 것이다. 남편으로서는 다시는 맞이할 수 없을 어버이날이기에 생각고 가져온 것일 게다. 꽃바구니가 창가에 놓이니 병실 분위기가 환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뿌리가 잘린 꽃이 그닥 내키지 않았다. 잘린 꽃처럼 부질없는 것이 있을까. 잠깐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만 꽃으로서는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가망없는 환자에게 가져온 꽃바구니가 꼭 상여꽃처럼 보였다.


죽을 날을 받아놓은 환자에게 꽃다발이나 꽃바구니는 선물로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뿌리가 잘린 면에서 둘은 다를 바 없어보이고 환자를 닮아가면서 꽃도 시들어가기 때문이다. 넘실거리는 생을 소유하고 싶은 저 열망들은 병실에 떠도는 죽음의 냄새에 잡아먹혀간다. 물을 갈아줘도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꽃조차 시들어가는 것을 병실에서 보고 싶지 않다. 앙상하게 말라비틀어가는 꽃을 바구니에서 꺼내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이 병실에서 두 사람이 죽어나갔다. 죽어야 병실에서 나갈 수 있는 사람에게 꽃바구니의 운명은 그의 운명이기도 하다. 꽃 같은 날을 다 보내고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에게 꽃바구니는 처량한 곡소리를 낸다. 겉으로는 화사하지만 뿌리가 잘린 꽃은 며칠을 버티다가 결국 시들어간다. 호전되거나 쾌유할 수 있는 환자가 아니라면 꽃을 선물하지 말라.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에게 꽃은 잔인한 것이다.(2011년 5월 16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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