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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마음

by 인상파

숨은 마음


'숨어 있는 책' 방 주인 노동환 선생님이 다시 문병을 오셨다. 책방 일로 얼마나 바쁘실까 싶은데, 그 먼 길을 마다 않고 시간을 내어 남편을 찾아주셨다. 얼마 전 어머님을 떠나보내고 깊은 상실 속에 계셨는데, 그런 까닭에 남편의 병세가 더 마음에 와닿으셨던 모양이다.


선생님은 한참 동안 남편을 지켜보다가 내게 상심이 크겠다며 걱정의 말을 건네셨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 사주라며 봉투를 내밀었다. 전번에 오셨을 때도 그러셨는데, 이번에도 거절을 해도 결국 놓고 가셨다. 나는 그저 마음만 받고 싶었는데,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은 늘 그렇게 남아 버린다. 남편이 가끔 “사람은 착하고 봐야 한다”던 말을 하곤 했는데, 바로 이런 분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요즘 내 몸은 일주일 단위로 하혈이 시작된다.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간병이 끝나는 토요일이 지나고 하루, 이틀 후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전에 없던 일이어서 걱정이 되어 남편이 입원한 병원의 산부인과를 찾아 초음파와 암 검사를 받았다. 나는 단순히 폐경 전단계라 여겼는데, 의사는 피로 누적과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생리 불순이 온 것이라 했다. 큰 병이 아니라 다행이라지만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호르몬제를 처방받으며, 일주일을 먹어보고도 증상이 계속되면 치료 목적으로 피임약을 써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생리 불순에 피임약이라니, 얼핏 들으면 도무지 맞지 않는 말 같았다. 그러나 같은 성분의 약이 목적에 따라 달리 쓰이기도 한다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 감기약 속 해열제가 때로는 진통제로 쓰이듯, 삶의 무게 또한 이렇게 엉뚱한 방식으로 번져나가는가 보다.

(당신이 떠나기 25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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