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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지 못한 얼굴

by 인상파

기억하지 못한 얼굴


남편의 군대 선배, 나한재 선생님이 문병을 오셨다. 인천 공항에 손님을 맞으러 가는 길에 잠시 들른 것이라 했지만, 내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가 느껴졌다. 선생님은 작년 12월에도 우리 집에 찾아오셨다. 남편은 그분과 종종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냈는데, 재발 이후에는 연락을 했는지, 하지 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 소식이 없어지자 나는 남편의 상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내 쪽에서 먼저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왠지 그분은 내게 먼 친척뻘 오라비 같은 존재였다.


남편의 재발 소식을 전하다가 나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수화기 너머로 난감해하는 기색이 전해지는 듯했지만, “조만간 집으로 찾아가겠다” 하시더니 며칠 뒤 정말로 방문해주셨다. 그날 남편은 식탁에 앉아 군대 시절 이야기를 나누며 환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나도 마음이 놓였다.


그런 반가운 손님이 다시 찾아왔건만, 오늘의 남편은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며 시간의 감각조차 잃어버린 듯 초연했다. 이름을 불러도 소리에 반응은 하지만, 멍한 눈빛으로 시선을 허공에 흘려보냈다. 그분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선생님은 남편의 얼굴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조용히 자리를 떴다. 살아서 두 번 다시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어젯밤에는 아들 녀석이 펄펄 끓는 열로 뒤척였다. 욕조에 미지근한 물을 받아 몸을 닦아주고 해열제를 먹이자 다행히 열이 가라앉았다. 그렇지 않아도 간신히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데, 아이까지 병을 앓으니 마음이 더욱 어수선하다. 아이 곁에 있어야 하나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남편의 곁을 지키기로 했다. 발작이 언제 닥칠지 알 수 없는 사람, 그 하루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가 남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남은 지상의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나와 같은 공기 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 날들이 얼마나 남았을까. 하루가 다르게 줄어드는 기척이 느껴지지만, 그것은 인간의 몫을 넘어선 일, 오직 하늘만이 알고 있는 일이리라.


입맛이 없어 밥을 거르니 몸이 허공에 뜬 듯 가볍고, 머리는 빙글빙글 돈다. 순간 몸이 가벼워 좋은가 싶다가도 이러다 탈이라도 날까 두렵다. 아직 내가 쓰러질 때는 아니다. 억지로라도 먹고 견뎌야 한다. 남편을 간병하고, 아들을 소아과에 데려가고, 딸아이의 불안을 달래려면. 내가 버텨야 한다.

(당신이 떠나기 3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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