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발걸음
아들 녀석이 감기 기운이 있어 소아과에 들렀다. 집에 데려다 주고 남편 병원에 가려 했는데, 녀석이 자기도 따라가겠다며 떼를 썼다. 몸이 안 좋은데도 엄마 곁에 있고 싶었던 모양이다. 감기 때문에 데려가지 않으려 했지만, 소아과에서 기다리느라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고, 마침 딸아이는 집에 있겠다고 해서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병실에는 이미 어머님과 아버님이 와 계셨다. 며느리와 손자가 들어서자 반갑게 맞으셨지만, 아픈 아들을 두고 빨리 오지 않은 게 못마땅하셨는지 순간 얼굴빛이 달라지셨다. 아픈 사람 앞에서 이런 싸한 기운은 만들지 말아야 하는데, 그런 분위기가 더 마음을 무겁게 했다.
간이침대에 앉아 잠든 남편을 바라보고 있는데, 상수 형이 친구 되는 민영 형과 함께 들어섰다. 어머님은 그 모습을 보시자마자 눈물을 흘리셨다. 먼 평택에서 일부러 찾아와 준 아들 친구의 손을 붙잡고 고마움을 감추지 못하셨다. 연락도 없었기에 오지 않는 줄 알았는데, 짬을 내어 와 준 그 마음이 참 고마웠다.
점심 무렵, 상수 형이 어머님께 식사를 권했지만 어머님은 생각이 없다 하시며 거절하셨다. 대신 우리끼리 아들 녀석이 좋아하는 돈가스를 먹으러 근처 식당에 들렀다. 세 사람은 별로 입맛이 없어 젓가락만 들고 있었고, 그저 아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남편 얼굴을 지켜보고 있는데, 상수 형이 로비에서 담배를 피우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도 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슴 통증에 호흡 곤란과 경련이 와서 응급실에 들렀다 왔다고 한다. 다행히 큰 이상은 아니라 했지만, 친구 문병 와서 응급실에까지 갔다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정밀 검사를 권유받았다는데, 부디 아무 일 없기를 바랐다.
그날 병실은 아픈 이를 걱정하는 가족과, 먼 길을 달려온 친구의 발걸음으로 한동안 따뜻하게 채워졌다. 그 온기가 오래 남아 주기를 바랄 뿐이다.
(당신이 떠나기 4주 정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