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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Nov 01. 2024

간병일기 후 02

당신에게 가는 길. 공원묘지에는 어떤 날씨가 제격일까. 안개비가 축축하게 뿌려대는 그런 날씨가 아닐까. 그러지 않아도 음산한 공원묘지에 여러 날째 비바람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 날씨와 그런 공원묘지에 딱 어울리는 울적한 분위기의 여자가 우산을 받쳐 들고 공원묘지를 오른다. 이미 망자를 방문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있지만 여자는 그들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자 곁에는 빛바랜 수박색 남방에 베이지색 반바지를 입고 샌달을 걸친 남자가 있다. 그도 우산을 받쳐 들고 여자와 보폭을 맞춰 걷고 있다. 그 남자의 존재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지만 여자의 눈에는 선명하게 보였다. 투명한 그 남자를 여자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여자는 망자에게 말을 걸면서 망자를 동무삼아 망자의 집에 가고 있는 중인 것이다.


여자가 망자의 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있다. 그제 세상을 떠난 누군가가 막 화장터에서 한 줌 재로 변해 유골함에 담겨온 모양이다. 유골함을 안치한 유가족들은 그리 오랜 시간 머물 수 없다. 또 다른 누군가의 죽음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죽음은 분 단위로 계속 밀려든다. 유가족들은 유골함 귀퉁이를 차지할 비석과 사진의 크기로 의견이 분분하다. 위패도 필요 없으니 그것마저 봉안시설에 집어넣자고 한다. 드디어 한 죽음이 봉인되자 사람들은 망자를 두고 떠나갔다. 시끄러운 납골당에 적막함이 찾아들었다.

 

유족들의 소란에도 여자는 그들과 거리가 있어 남자의 유골함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말걸기를 시도한다. 하지만 남자에게 집중하기 어려워 대화는 이뤄지지 않는다. 여자는 남자를 불러내보지만 남자에게서 어떤 신호도 받을 수 없다. 여자와 남자의 대화는 공원 입구에서 망자의 집까지가 전부였다. 여자는 뇌리에 각인된 남자의 이미지에 유영하며 남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려 애써보지만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 


당신을 만나고 내려오는 길에 오십대로 보이는 부부가 손을 잡고 걷는 걸 보았다. 다정한 그들의 모습을 보니 옆구리가 허전했다. 공원묘지 입구에서 함께 걷던 당신은 이미 내 곁에 없었다. 당신의 목적지는 당신의 육신이 재로 변한 납골함이었을 것이다. 마중은 가능하지만 배웅은 불가능한 것이 당신 세계의 불문율일까. 


육신을 잃은 당신의 부재에 가슴이 내려앉는다. 내 마음 속에서 당신이 살아간다고 해도 당신은 부재한 존재.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의 당신이, 입관 전의 파리한 얼굴의 당신이, 화장터 화로에서 허연 재의 형상으로 남은 당신이 겹쳐 떠오른다. 살아서 다정했던 당신은 사라지고 그렇게 떠나가는 당신만이 살아있다. 이제 말도 걸 수 없고 손도 잡을 수 없는 당신, 정녕 이 세상과 작별을 고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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