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난 날씨는 후덥지근하다. 햇볕도 강렬해서 반팔 티셔츠에 드러난 맨살이 따갑다. 불볕 속을 걸어가면서 불기운이 내 몸을 갑작스럽게 할퀴는 상상을 하고 말았다. 화장터 화로에서 당신 몸을 태웠을 그 열기가 이내 내 몸으로 옮겨 붙는다. 어지럽고 숨이 가빠온다. 가는 길에 놓인 쉼터에 앉아 잠시 숨을 골랐다.
아득해졌던 정신이 돌아오고 나는 짐짓 이까짓 햇볕이 뭐라고 엄살을 부리는 거냐?며 스스로를 질책했다. 걸음을 재촉하여 당신에게로 간다. 오늘은 납골당이 정적이 감돌 정도로 한산하다. 당신의 유골함을 찬찬히 응시하다가 고개를 숙이고 살아서 건강했던 당신 모습을 떠올려보려 눈을 지끈 감는다. 시공이 분명치 않은 곳에서 당신은 그냥 웃고 있다. 햇살이 내 몸의 우울한 기운을 꾸들꾸들하게 말렸는지 오늘 내 감정은 눅눅하지 않다. 아까 화마에 휩싸였던 끔찍한 상상도 이미 달아나고 없다.
감았던 눈을 뜨고 머리를 들어 주변의 망자들을 살필 만한 여유도 생겼다. 죽음은 나이를 따지지 않고 사람을 데려갔다. 당신보다 나이가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는 사람들이 유골함 옆에서 웃고 있다. 언젠가 햇살 좋고 볕 따가운 오늘 같은 날, 나도 먼지보다 가벼운 무게의 영혼으로 당신을 만나러 갈 것이다. 적막한 납골당에서 눈물 없이 오늘은 당신을 그릴 수 있었다.
이 의식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언젠가는 이 의식도 끝을 볼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 때가 아니라는 것을 몸은 말하고 있다. 당신과 함께 한 세월이 있어 당신이 떠났다고 당신 없는 세상을 갑작스럽게 받아들이질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떠나기 전 아침마다 병원으로 옮겼던 발걸음을 이제는이곳 공원묘지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거처지와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이곳은 생과 사를 확연하게 가르고 있어 당신의 시간은 영원히 부재가 된 반면 나의 오늘과 내일은 영원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다. 머지않아 당신이 영영 다른 세계로 떠났다는 것을 인정하면 그땐 당신에 대한 그리움도 옅어질 것이다. 잊으려 하지 않아도 부박한 현실 앞에서 자주 길을 잃고 헤매느라 당신의 존재는 내게서 서서히 희미해져갈 것이다. 그래도 당신 너무 섭섭해하지 마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