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보내고 나는 다짐을 한다. 잠자는 당신을 불러내지 않기로. 하지만그렇게 맘을 다잡고 돌아서는 순간, 곧장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쩜 당신은 내가 죽는 날까지 내 안에 둥지를 틀고 나에게 말 걸기를 멈추지 않을 것 같아. 아니, 내가 당신을 놔주지 않고 평생 소곤거릴 것 같아.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당신이었으니 저 세상에서도 이곳의 내게 힘을 주리라 믿어.
당신이 가끔 말했지. 아쉬울 때가 좋은 거라고. 그런데 당신의 그 말 지금은 틀린 거야. 당신이 몹시 아쉬워 가슴이 시리고 아플 정도야. 까짓것 뭐, 할 수 없다하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담배연기마냥 푸우 한 번 내뱉고 말면 그 아쉬움이 좀 가실까? 회자정리라며, 당신의 부재를 달게 받아들이라고 내게 충고할 거라면 그만 둬 줘. 나는 아직 당신이 떠난 사실조차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으니까.
당신이랑 함께 한 세월을 가늠해 보고 있어. 주말부부나 기러기 아빠니 하여 함께 하는 날들이 적은 남들에 비하면, 우리는 참으로 많은 시간들을 함께 보냈지. 1991년에 만났으니 만난 횟수로는 22년이고 결혼 횟수로는 15년. 거기에 프리랜서라는 당신의 직업 특성상 많은 나날을 붙어 지냈으니 오랜 시간을 보낸 셈이야. 그 세월이면 억울하지는 않을 정도지. 그런데 당신이 가버리고 나니 그 세월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 같아. 이제 달랑 혼자 남겨졌으니 당신의 부재가 더욱 크게 와 닿는 거겠지.
당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 어느 날 예고도 없이 훌쩍 떠나버리지 않고 나에게 감정을 추스를 시간을 줘서 말이야. 쓰러지고 난 다음 병원에서 다섯 달 열흘을 버텨줘서 정말 고마워. 겪는 당신이나 지켜보는 사람이나 고통스럽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그것 또한 인간이 세상을 하직할 때 당연히 치러야 하는 비우기 절차가 아니었나 싶어. 당신을 보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당신의 배려라고 믿고 있어.
그리고 미안해. 당신의 고통에 아무 도움이 돼 주지 못해 정말 미안해. 살 가망 없이 죽을 날을 눈앞에 받아놓은 사람의 마음까지는 도저히 헤아릴 재주가 내겐 없었어. 하루하루 나빠져 가는 당신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지독한 공포심과 허망함으로 몸부림을 쳤어. 주사약병을 주렁주렁 달고 고통스럽게 연명하는 것은 분명 당신이 의도하던 죽음의 형태는 아니었을 거야. 당신 성격상, 그럴 바에야 좀 더 인간다운 ‘자유죽음’을 선택하고 싶어했겠지. 태어난 것은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났으니 갈 때만큼은 자기 의지에 따라 가고 싶다고 말하곤 했으니 말이야. 병이 깊어지면서 당신의 의지는 이미 먼 길을 건너 버렸으니 그저 다가오는 죽음을 서서히 맞이할 수밖에 없었지.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당신이 고마웠어.
두 아이를 두고 가버린 것이 야속하다가도 당신이라고 왜 살고 싶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에 미치면 가슴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것 같아. 얼굴을 적시는 눈물과 콧물을 주체하지 못하겠어. 떠난 사람은 당신인데, 당신은 말이 없는데 왜 나는 이다지도 무정한 마음을 갖지 못하고 인간사에 몸서릴 칠까! 당신은 그 억울함을 호소할 수 없는 세계로 떠나버렸어. 송곳처럼 예리하게 폐부를 찌르는 물음도 부질없어졌어. 입원 전에도 그랬지만, 병원에서도 당신 스스로에게 연민을 보이지 않은 점 정말 고마워.
오늘 아침 등교하는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서 당신을 보러 갔어. 아니, 이 말은 틀린 말이야. 당신이 아니고 당신의 납골함과 납골함에 적힌 당신의 생과 졸에 관한 숫자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왔어. 추적추적 비 내리는 부평가족 공원묘지에 당신이랄 수 없는 당신을 보고 눈물을 쏟으며 흐느껴 울었어. 왜 나만 두고, 나만 두고 갔냐고! 고인인 당신은 한 줌 재가 돼 납골함에서 나와 잠시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힘내라고 했겠지.
당신의 유골함을 열면 당신의 영혼이 하얀 연기를 일으키며 옷자락을 펄럭이며 알라딘의 요술 냄프 지니처럼 “옥아, 무엇을 도와줄까?” 할 것만 같아. 육신을 갖지 못한 당신의 영혼은 투명하디 투명하여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 당신이란 사람이 무생물의 자연이 된 사실 말고는 나는 아무것도 알 수 없어. 당신의 몸이 그리워 당신의 유골함을 열어보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일어. 그걸로 다시 당신의 육신을 빚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마저 들어.
세상사 잊고 고적하게 사라지는 죽음은, 그 소멸의 힘은 남은 자에게 슬픔과 고적감을 안긴다. 영적 인간이 물화돼 무생물의 자연물 외에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된다는 것이. 아니, 죽음은 차라리 평온해 보인다. 육신의 고통은 물론 감각과 사유의 감옥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니 말이야. 살아있는 것이 이토록 지루하고 진부하고 질기게 느껴지는 것과는 달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