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의 하직
세상과의 하직
간병을 끝내고 집으로 왔다. 어느 때보다 지친 몸이다. 머리가 띵하고 몸에서는 자주 식은땀이 난다. 한기가 느껴지고 몸에 맞지 않은 옷을 걸친 것처럼 몸이 부자연스럽다. 밤새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는데도 쉴 수가 없다.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신경이 아주 날카로워져 있다. 병실에 있으면 아이들 생각으로 맘이 편치 않더니 집에 오니 남편이 눈에 밟힌다. 이 아이들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경제력도 없이, 할 수 있는 것도 없는데, 아이 둘을 어떻게 키워나갈 것인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이 험한 세파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나.
장마철이라 비가 오락가락이다. 앉아도 불안, 서도 불안 손에 잡히는 일이 없다.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다. 아들 녀석에게 두 발 자전거를 가르치려고 자전거를 끌고 나간다. 날씨도 내 편이 아니다. 자전거를 끌고 나가 자전거 꽁무니를 몇 번 잡아주고 있으면 비가 쏟아진다. 집으로 들어오면 또 금세 그친다. 다시 끌고 나가 연습 시키기를 반복하니 잡아주지 않아도 아이 혼자서 잘 타게 되었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남편이 호흡 곤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2박을 하고 오전에 집으로 돌아온 엄마가 다시 병원에 가 봐야한다고 하니 아이들이 불안한 기색이다. 아빠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감으로 알아채고 아빠 죽는 거냐고 울어댄다. 아이들을 언니에게 맡기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남편이 숨을 헐떡이며 나를 바라본다. 숨을 들이키기도 힘든 상황이 된 모양이다. 형님 내외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이 안 좋다는 것을 설명했다. 간호사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빈 병실이 나면 옮겨주겠다며 우선은 간호사실 옆 주사실로 남편을 옮겨간다. 자리를 옮기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남편은 배설물을 쏟아내고 납빛 얼굴로 숨을 거뒀다. 떠나는 그의 손을 잡고 통곡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의 떠남을 늦추지 못했고 그와 적당한 인사말도 나누지 못했다. 그는 갔다. 내가 생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떠나갔다.
울고 있는 내게 간호사가 원무과에서 병원비를 계산하고 오란다. 남편의 몸은 아직 따뜻한데 나는 병원비를 치르느라 남편 곁에서 너무 빨리 떠나버렸다.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그리 어리석게 굴었는지. 두고 두고 후회가 됐다. 일을 끝내고 올라와 보니 남편이 이미 하얀 천으로 덮여있다.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숨을 헐떡이던 사람이 아니었다. 허연 천에 덮인 시신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는 겁이 났고 그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를 실어가려고 장례식장에서 두 사람이 올라와 있었다. 그는이제 병원이 아니라 장례식장에 속하는 존재였다.
저승길이 먼 줄 알았는데 숨 한 번 들이마시는 찰나의 거리에 있는 줄 정말 몰랐다. 몇 분 간격으로 그는 사람에서 시신으로 바뀌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퀭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는데 그 사람은 어디로 가버렸단 말인가. 그의 영혼은 어디로 떠나고 그의 육신만 여기 덩그렇게 남았는가.
병원 장례식장에서 차가 와 있으니 보호자 한 명만 동반하란다. 남편을 실은 이동침대를 잡고 병원 출입구로 나가니 남편을 실을 차가 와 있다.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는 장례식장으로 차를 타고 가는데 장맛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장례식 가는 길과 잘 맞아떨어진 날씨였다.
장례식장 지하의 내리막길로 들어서자 남편의 몸이 통통 튀기 시작한다. 그 입구가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머릿속으로 그리기만 했던 지하세계가 아마 그런 어둡고 축축한 풍경일 것이다. 흐릿한 불빛으로 사방은 어둑어둑하고 눅눅한 기운을 몰고 검은 옷을 입고 누군가가 죽은 자를 데리러 올 것 같은 분위기다. 비까지 쏟아져 지하의 습한 기운이 몸을 감돌자 한기가 느껴진다. 우는 내 목소리마저 떨고 있다.
검은 옷에 표정 없는 장례식장 직원이 입관하기 전 입는 옷이 있는데 얼마짜리를 할 거냐고 묻는다. 넋 놓고 훌쩍이고 있다가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보통으로 해달라고 했다. 환자복을 벗기고 남편 몸을 닦더니 하얀 옷을 입혀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그럼으로써 나와 남편은 서로 다른 세계로 들어섰다. 나는 숨을 쉬고 있는데 그는 숨을 쉬지 않는다. 그 차이다.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의 차이. 살아있는 나는 지상으로 올라왔고 그는 차가운 냉장고로 들어갔다.(2011년 7월 2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