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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글 29

임사체험

by 인상파

임사체험


지난 4월 3일 목요일 불교박람회를 다녀왔다. 작년이었던가, 딸이 불교박람회 온라인 사전 등록을 한다는 공지가 떴다고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하여 망설임 없이 등록을 시켰다. 우리 집안 사람들은 종교를 갖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걔 중에 하나를 택한다면 불교도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불교도는 어디에 소속됨이 없어도 주장할 수 있고 마음의 부처라는 말처럼 자신을 믿으며 살아가면 되는 것이니 구태여 신도라는 이름까지 빌려 살 것까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었다. 지금은 종교에서 졸업했지만 그래도 질풍노도기를 겪은 한 시절에는 비구니를 꿈꾸기도 했고 40대 후반에는 정토회를 한 1년 다니기는 했지만, 물론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교회를 다녔다, 인생 후반에는 그 모든 종교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져 더는 기웃거리지 않게 되었다.

딸은 만화박람회나 도서와 그림 등의 전시회, 지인의 음악 콘서트까지 빠지지 않고 쫓아다니는 편이다. 그에 비해 나는 엉덩이가 무거워 나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딸이 미리 불교박람회에 임사체험 코너가 있다는 정보를 던져주며 나를 자극시켰던 것이다. 임사체험, 말만 들어서 뭔가 생활에 강한 타격을 가할 것 같은 인상을 풍긴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내 삶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 돌아섰고 이후 더욱 집요하게 죽음이라는 테마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았다. 죽음은 삶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편안하게 받아들여진다. 남편부터, 친정아버지, 시어머니, 시아버지 순으로 가족의 죽음은 경험했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더 잘 안다고 할 수도 없다. 죽음은 오로지 죽어가는 자에게만 허락된 선물이어서 살아있는 자는 죽어가는 자를 목도할 뿐이지 죽음과 대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평소 임사체험에 관심이 있었는데 불교박람회에 그 부스가 마련돼 있다는 것이다.

불교박람회는 박람회인 만큼 볼 것이 참으로 다양했다. 부스마다 불교 관련 제품과 예술품, 자연 친화적인 사찰 음식 재료가 많았다. 그 많은 물건 구입을 충동질하고 있었는데 왠지 그것은 불교의 무소유 정신에 맞지 않아 보였다. 물질에 대한 소유욕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할까. 임사체험 부스에는 체험하려는 사람이 없어서 그랬는지 담당 직원이 자리를 뜨고 없어서 조금 기다렸다. 부스에는 관이 놓여 있고 수의가 걸려 있었다.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말투가 강압적이었다. 죽음을 관장하는 사람 특유의 거역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는데 그는 나에게 수의를 입히며 수의가 보통 옷과 달리 없는 것이 뭔지 아냐고 물었다. 보아하니 매듭을 지을 끈이 없었고 뭔가 넣을 주머니가 없었다. 죽으면 끈이 떨어지고 가져갈 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리라. 수의에는 한문으로 많은 글자들이 적혀 있었는데 그것은 금강경이라고 했다. 집착과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기를 바라며 입혀준 수의를 걸치고 관 속에 누웠더니 딱딱 못을 박는 소리가 들리고 어둠이 찾아왔다. 나는 나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바깥을 오가는 사람들 소리에 신경을 쓰느라 주어진 1분 정도의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직원이 관을 딱딱 치고 뚜껑을 열어 일어났더니 새로 태어난 느낌을 묻는다. 내가 없어도 세상은 여전히 돌아간다는 것 정도였다. 형식적이기는 해도 죽는 순간까지 죽음에 집중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실망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와 오랫동안 책꽂이에서 잠을 자고 있던 <임사체험>을 꺼내들었다. 이 책을 읽을 때가 온 것이다. 그동안은 책 등에 적힌 제목만으로 눈인사를 나눴을 뿐이다. 다나카 수상의 실각을 야기한 ‘다나카 연구’의 저자이며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로 유명한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이다. 죽을 고비를 넘기는 사람들이 죽음의 순간에 직면하여 밝히는 불가사의한 이미지를 적고 있는데 그것은 종교적인 색채와 그 사람의 생활과 무관하지 않아 보였다. 나는 무엇보다 이 책의 앞 면지에 적힌 700년 전 어느 페르시아 시인이 쓴 시에 꽂혀 관속으로 들어갔을 때보다 더한 환희를 맛보았다. 죽음에 관한 글 중에 지금껏 읽어온 어떤 글보다(물론 읽은 게 없어서이겠지만) 강렬하게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

나는 돌로 죽었다. 그리고 꽃이 되었다./ 나는 꽃으로 죽었다. 그리고 짐승이 되었다./ 나는 짐승으로 죽었다. 그리고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왜 죽음을 두려워하나./ 죽음을 통해 내가 더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변한 적이 있는가./ 죽음이 나에게 나쁜 짓을 한 적이 있는가/ 내가 사람으로 죽을 때 그 다음에 내가 될 것은 한 줄기 빛이거나 천사이리라./ 그리고 그 후는 어떻게 될까./ 그 후에 존재하는 건 신뿐이니 다른 일체는 사라진다./ 나는 누구도 보지 못한, 누구도 듣지 못한 것이 되리라./ 나는 별 속의 별이 되리라./ 삶과 죽음을 비추는 별이 되리라.

아, 바로 이것이 죽음이다 싶었다. 어둠이 걷히는 느낌이었다. 삶이 아니라 죽음으로 옛사람과 연대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만물의 영장으로서 인류가 죽음을 통해 신적인 존재로 나아가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내야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죽음이 나에게 나쁜 일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이 지상에 남겨진 시간을 허투루 써서는 안된다는 것을. 나의 유한성을 염두에 두고 매진해야함을.(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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