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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기웃거리다 2

치자나무

by 인상파

치자나무


오지항아리 화분의 치자나무

진드기가 꼬인 대로

누르스름한 얼굴 파묻고

무얼 그리 그리워하나


오월이라 치자동무들

유자밭 언덕에 서서

하얀 바람개비꽃 날리며

가지 하늘만큼 쳐들었을 텐데


햇살 한 줌 바람 한 줄기

다시 못 받을 걸 아는지

잘린 채 꺾인 채


기억처럼 그리움처럼

작은 숨결같은

꽃 한 송이 밀어올리고


오갈든 잎사귀 하나

세상 밖으로 날리며

안녕 안녕 안녕…


시골에서 자라고 있는 치자나무를 도시의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우겠다고 치자나무의 허락도 받지 않고 뽑아왔습니다. 가지를 자르고 뿌리를 다듬어 오지항아리 화분에 심었는데 치자나무는 잘 자라지 못했습니다. 화분에 담겨 있으면 보기 좋을 것 같고 시골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서 데려왔지만 시들어갔습니다. 갑작스럽게 바뀐 환경과 잘리고 꺾인 고통, 무엇보다 고향을 잃은 슬픔이 컸을 테지요.


그런데 죽었겠거니 하며 방치한 화분에서 치자나무가 작고 볼품없는 꽃 한 송이을 피워올렸습니다. ‘나 여기 있어요’ 하듯 은은한 향기를 풍기며 꽃봉오리를 내밀었습니다. 끝을 알고 그저 메마른 흙에서 마지막 남은 생의 기운을 짜서 불꽃을 태운 거였을 테지요.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이후 치자나무는 고사되고 말았지만 내 뇌리에는 치자나무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 깊게 각인돼 이렇게 시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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