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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기웃거리다 3

by 인상파

바람의 노래


포크레인 아저씨는

나무 뿌리를 뽑으려다 말고

나뭇가지를 쿵쿵 내리쳤습니다


아침이면 베란다에 나가서

저녁이면 놀이터 그네 위에서

나는 그 나무를 바라보는 걸 좋아했어요

말없이 내 말을 들어주는 바람이라는 이름의 나무였어요


아파트 옆으로 도로를 낸다고 저 야단이구나

열어놓은 베란다 창문에 얼굴을 내밀고

내 옆에서 공사현장을 지켜보던 엄마가 말했어요


고철더미처럼 짓이겨진 나무는

생벼락을 맞은 듯 몸부림을 치다가

울부짖으며 질질 끌려 나왔습니다


온통 핏빛 흙만 남은 산자락


그날 이후

산그늘은 멀리 달아나버렸고

나는 자주 아프고

자다가도 숨이 턱 막히곤 했어요

포크레인이 달겨들어

내 사지를 쾅쾅 찍어대기 시작했거든요


눈을 감으면

머리풀고 흙에 쓸려가는 나뭇가지 끝에서

무언가 날 향해 소리치는 것 같았어요

무섭다고 울부짖을 때마다

엄마는 '참 질긴 나무'야 하는 거예요


그런 밤이면 어둠속에서

바람이 섰던 곳을 한참 바라봤어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없었어요.

다만 샘물처럼 바람 속에서

'나는 나무일까… 나무는 나였을까…'

바람의 노래가 내 마음속에서 울렸어요



이 이야기는 실제 제 곁에서 일어난 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살던 아파트 옆 산자락에는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언덕에 홀로 서 있던 그 나무는 아무 말 없이 계절을 견디고, 바람을 따라 흔들리며 우리 동네를 지켜보는 존재였습니다.


어느 날, 그 나무가 사라졌습니다. 산이 깎이고, 도로가 생기자, 풀과 나무, 흙과 그림자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포크레인의 쇳소리에 먼지 날리는 오후에 저는 그 잊히지 않는 장면을 멀리서 목격하고 마치 제가 짓이겨지기라도 하는 듯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 후로 오래도록 마음속에 나는 나무였을까? 하는 질문이 남았습니다. 여전히 세상의 어딘가에서 조용히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바라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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