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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행복한 봉숭아

by 인상파

행복한 봉숭아, 박재철, 길벗어린이


행복한 봉숭아


행: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복: 복사꽃 피는 산골 어드메

한: 한들한들 봄바람 속살일 때

봉: 봉문 울타리에 봉숭아 심어놓고

숭: 숭굴숭굴한 아내와 아장아장 딸내미에게

아: 아침 바람 선선하면 봉숭아 물들여주는 것


행복을 들이는 봉숭아


봉숭아, 봉숭화, 봉선화. 같은 꽃을 가리키는 것 같으면서도 어감이 달라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네이버 어학사전에 따르면 봉숭아는 ‘봉선화과의 한해살이풀’이라고 설명되어 있는데, 이를 보면 봉선화가 더 넓은 개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봉숭아의 한자 표기가 ‘봉선화(鳳仙花)’이므로 둘은 같은 대상을 가리킵니다. ‘봉숭화’는 이 둘을 혼동해 생긴 잘못된 표현이지요. 이름도 알쏭달쏭한 봉숭아는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에게 손톱에 물들이는 꽃으로 사랑받아 왔습니다. 식물의 생명력은 참 신비롭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곳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니까요. 그림책 <행복한 봉숭아>에 나오는 봉숭아도 사람들이 오가는 큰길에 뿌리를 내려 짓밟히지 않고 살아남아, 단이라는 아이의 눈에 띄어 ‘단이의 봉숭아’가 됩니다.


이 그림책은 봉숭아 물을 들이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봉숭아 꽃잎과 잎을 따 백반을 넣고 찧은 뒤, 잠들기 전 손톱과 발톱에 붙이던 기억. 백반이 닿은 살갗이 쏙쏙 아려왔지만, 밤새 그 통증을 참고 봉숭아 물을 들였던 건 첫눈이 올 때까지 손톱에 그 물이 남아 있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을 믿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런 기억이 깃든 봉숭아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마음을 물들이는 시간이고, 사랑을 기다리던 소녀의 설렘이며, 지나간 계절의 따뜻한 빛깔이기도 합니다.


봉숭아 물이 들었던 손톱처럼 기억도 붉게 물듭니다. 그 시절의 행복을 떠올리며 문득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가진 것 없고 잘난 것 없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계절 자연을 벗 삼아, 조금은 부족하고 조금은 남을 만큼만 거두어 생계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삶. 먹을 게 넘쳐나도 늘 부족하다며 불평하는 욕심쟁이가 아니라, 자연이 주는 것을 넉넉히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의 소유자라면 그 자체로 행복하지 않을까요. 거기에 손톱 발톱에 물들일 봉숭아 몇 포기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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