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한 잡초
신기한 잡초, 퀸틴 블레이크 그림· 글, 서남희 옮김, 시공주니어
신기한 잡초
신: 신통방통한 일이에요
기: 기적처럼 싹이 돋아나더니
한: 한 길보다 웃자란 풀이
잡: 잡은 손처럼 이파리를 내밀어
초: 초승달이 돋기 전 사람을 구했대요
인간을 구하는 자연
퀸틴 블레이크는 유쾌하고 재기 넘치는 그림체로 삶의 본질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는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그림책에서 그는 이전과는 결이 다른, 한층 묵직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세계는 점점 거칠고 메말라가며, 생명 하나 움트지 않는 삭막한 공간으로 묘사됩니다. 흙의 숨통조차 틀어막힌 이 세계는 개발에 몰두하며 자연을 소외시킨 오늘날의 도시와 다르지 않습니다. 작가는 그런 황폐한 땅 아래로 한 가족을 가두며, 우리가 눈 감아온 현실을 독자들에게 뚜렷하게 직면시킵니다.
그림책에서 전환의 실마리는 가족과 함께 갇힌 한 마리의 구관조가 물고 온 씨앗에서 비롯됩니다. 이 씨앗은 단순한 식물의 씨가 아니라, 마치 고전 설화 속 ‘흥부의 박씨’처럼 상징적 생명력의 근원입니다. 삽시간에 자라난 신기한 풀은 말라붙은 대지를 가르고, 빛 한 줄기 들지 않던 땅속을 뚫고 솟아오릅니다. 다소 무서울 정도로 빠른 생장 속도는 자연의 회복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저지른 환경 파괴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인지를 반어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블레이크는 이 신기한 풀을 통해 자연의 구원력을 강조합니다. 인간이 저지른 무분별한 개발과 욕망으로 인해 스스로 위험에 빠뜨렸지만, 그 파국의 끝에서 인간을 다시 살리는 건 결국 자연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이 그림책은 단순한 생존의 이야기 그 이상입니다. 눈앞의 위기를 피하려면 자연과의 공존 외에는 길이 없다는 것을 무너진 땅 아래 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틔운 그 풀처럼 독자의 마음을 파고듭니다. 땅이 사막화돼 가기는 오래전 일이고 그림책의 가족처럼 누구나 씽크홀에 빠질 위험에 놓인 것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위기에 처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자연뿐이며 자연과의 공존만이 살아남을 길임을 다시 한번 새기게 하는 그림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