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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돼지책

돼지책

by 인상파

돼지책, 앤서니 브라운 글과 그림, 허은미 옮김, 웅진주니어


돼: 돼먹지 않게 굴면

지: 지 엄마만 고생시킨다고

책: 책잡힐 걸!


엄마는 돼지를 사랑하지 않았다


집안일에서 양성 평등을 주장하는 고전적인 그림책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은 예전과 달리 직업에 남녀 구분이 많이 사라졌고 맞벌이가 대세여서 집안일을 분담하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한 세대 전만 해도 집안일은 주로 여자의 몫이었지요. 학교 다니고 회사 다니는 것이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에게도 똑같이 힘든 일이었을 텐데 남자들은 대접을 받고 여자들은 그들의 시중을 들어야했으니, 얼마나 불공평한 일인가요. 가족 중 한 사람의 희생을 담보로 그 가정에 평화가 유지된다면 그것은 온전한 가족의 모습이라 할 수 없는 거지요.


앤서니 브라운은 초현실주의와 사실주의적인 그림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 해피엔딩으로 이끄는 작품이 많은데 이 그림책도 그렇습니다. 퇴근한 엄마가 남편과 아들들을 위해 묵묵히 집안일을 해내는 모습을 정말로 리얼하게 보여줍니다. 엄마가 가족들에게 경고의 메세지를 남겨놓고 가출이라는 다소 극단적인 방법을 취한 이후 집안 사람들이 돼지로 변해가는 모습은 섬뜩할 정도이고요. 마지막에서야 엄마의 웃는 표정을 볼 수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지 싶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을 암시하고 있는 돼지 얼굴을 그림에서 찾는 재미는 덤이고요.


뭐니뭐니 해도 책표지 그림이 압권입니다. 여자가 세 남자를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업고 있는데 이 그림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성의 희생이 무리하게 강요돼 있어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독자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릅니다. 온힘으로 세 남자의 무게를 지탱하느라 애를 쓰고 있는 여자의 표정없는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업힌 세 남자의 얼굴에는 짓궂은 웃음기가 피어나고 일말의 부끄러움은 찾아보기 힘드네요. 업혀가려 하지 말고 모두 함께 걸어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집안일을 엄마에게만 전담시키지 말고 조금씩 나눠보자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엄마의 얼굴도 활짝 필 테니까요. 엄마가 가족은 사랑해도 ‘돼지’를 사랑할 리는 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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