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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아버지와 딸

아버지와 딸

by 인상파

아버지와 딸, 미카엘 두독 데 비트 지음, 김리리 옮김, 이숲


아버지와 딸


아: 아버지 당신 떠나시고

버: 버들강아지 다시 휘날리는

지: 지금은 만물이 생동하는 봄

와: 와락 당신이 그리워

딸: 딸아이 몰래 눈물 훔칩니다.


기다림의 다른 이름은 사랑


자전거를 타고 둑길을 따라 달리던 아버지와 딸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집니다. 딸을 두고 아버지는 바다 멀리 나룻배를 저어 나아가야 했던가 봅니다. 꼭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겠지요. 딸은 그런 아버지를 해질녁까지 기다립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부녀의 이별은 그냥 이별이 아니라, 사별처럼 느껴집니다. 수평선 멀리 아버지가 노를 저어 사라지는 장면이 마치 죽음의 강을 건너는 것처럼 보여서일까요.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도 한동안은 불안한 예감으로만 남아 있었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는 걸 보면, 그것은 결국 확신으로 굳어집니다.


이 그림책은 세계적으로 많은 애니메이션상을 받은 작품인데 마음을 건드리는 힘이 있습니다. 떠났으나 떠나보내지 못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딸의 모습은 한 편의 조용한 사부곡처럼 읽힙니다. 딸은 자라면서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뒤에도,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진 뒤에도, 자전거를 타고 아버지가 떠난 둑길을 찾아갑니다. 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는 그 마음으로 삶의 허기를 견뎠을지 모릅니다. 기다림은 때론 희망이자 자신을 붙드는 끈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그 기다림은 정말 이루어졌을까요? 딸은 결국 노년이 되어 아버지를 다시 만나지만, 그것은 삶의 끝자락에서 이루어진 일이었고, 어쩌면 죽음을 통해 이루어진 재회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전거를 타는 딸의 모습은 한결같았지만, 기다림은 끝내 아버지를 현실로 다시 데려오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기다림은 결국 보상받는다’라기보다는 떠난 이를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일이 어떤 것인지 들려주는 듯합니다. 딸이 그토록 오래도록 간직했던 마음, 그건 어쩌면 공허를 안고도 놓지 못한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지도요. 그래서 딸은 평생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가르며 오지 않을 사랑을, 돌아오지 않을 아버지를 기다렸던 거겠지요. 기다림이란 떠난 이를 품고 살아가는 다른 방식의 사랑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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