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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상파 Jan 03. 2024

오늘의 운세 22

신경쓰이는 일이 많다

안부를 묻는다. 안부를 물어야하는 한 해의 첫날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은 옛말이다. 안부를 묻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잘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안부를 물어야할 때를 놓칠 수도 있다. 남편이 가고 난 다음 안부 전화를 몇 통 받았다. 남편과 핸드폰을 같이 쓰다가 물려받으면서 전화번호가 그대로 남아있어서 가능했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자의 안부를 물어왔을 때의 그 생경함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상대방은 정말 미안해하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그것은 상처가 됐다. 오래 오열했었다. 그리고 이상한 열기에 휩싸였다. 나만 모르고 있는 그 어딘가에서 그는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특히 같은 아파트에 사는 것도 모르다가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대학 교수가 있었다. 결혼식에도 참석해주신 고마운 분이었다. 결혼하고는 가정주부로 지내면서 찾아뵌 적이 없었으니 소식이 끊겼다. 그러니 남편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을 알 리 없었다. 빙수집에서 만나 변변치 못한 수다를 떨다가 그분이 남편의 안부를 물었다. 순간 숨이 가빠왔다.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남편이 살아있는 것을 당연시 여기며 계속 이야기를 이끌어갈 태세였다. 아닌 게 아니라 한때 남편은 그분과 함께 출판도서를 심사하기도 했다. 먼저 갔다는 말을 나중에야 알아들으시고 수전증이 있는 손을 더 심하게 떨었던 것을 보았다. 그 이야기가 나오고 우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아니 하지 못했다. 그랬던 그분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었다.

50대에 접어들면서 하나 둘 몸에 고장이 나고 있다. 나만이 아니라 같은 나이대의 친구들도 그렇다. 이미 큰 수술들을 받기도 하고, 부모를 먼저 떠나보내고 혈혈단신 비건강인으로 살고 있기도 하고, 이혼하고 반려견을 애착하며 가게를 꾸려가고 있기도 하고, 뇌염을 앓은 후 지적장애를 갖게 된 자식을 돌보며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어쨌든 살아남기 위해 모두들 애쓰고 있는 것을 볼 때면 마음이 시리다. 

자고 일어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몸에 자주 탈이 나는 나이에 접어들었으니 이런 새해에 안부를 묻는다. 친구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통화 내용이 달라진다. 아픈 데를 건드릴까 봐 조심스럽기도 하다. 다들 잘 살고 있지는 않다. 나 역시 이미 다 살아버린 느낌이 자주 고개를 처 든다. 늙었다는 뜻일 게다. 지천명이라는 나이가 무색해진다. 하늘도 예전의 그 하늘이 아니니 하늘의 명을 깨닫는 것이 힘들어진 것일까. 아주 건강하길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그렇다하더라도 건강을 유지하며 소소하게나마 행복하길 바란다.(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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