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의 독백
요조의 독백
―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고
웃음으로 말했다.
아이였을 때부터.
좋다 하지 못하고
싫다 하지 못했다.
가족의 웃음을
이해하지 못해
그 모든 대화를
익살스럽게 받아들였다.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웃기는 사람으로 남아
세상의 시선에 맞춰
부끄럼으로 살았다.
갈수록 광대의 가면을
과장되게 흔들어댔다.
외로움이 통한 여자를 만나
함께 죽음을 기도했으나
죽음은 내 편이 아니었다.
나는 두꺼비처럼 발광하고
불안과 파멸 속에
아무것도 아닌 자였다.
술과 약에 몸을 맡기며
죽음을 리허설하였으나
인간을 가장한 껍데기였을 뿐
살아 있으되,
이미 무덤에 누운 자였다.
인간이 아니라고
인간 실격이라고 단정하고도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 물음에 살았고
그 물음에 무너졌다.
인간 실격자라
죽음조차 날 거부하여
타인의 죽음으로
살아남으며 기생했다.
세상에 의미 따위는 없었고
나는 그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나를 배신한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와 마주한 그들이었기에
나는 이미 90도로 무너졌다.
죽고 싶어도
칼모틴은 없었다.
헤노모틴뿐이었다.
죽음에게조차 거부당한 자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자
살아 있어도
이미 죽은 자
죽어도 끝내
죽을 수 없는 자
그것이 나의 형벌이다.
모든 것은 날 비켜 갔고
모든 것은 나 없이 흘러갔다.
그저 살아 있음을 애도할지니!
작품 서문의 세 장의 사진 설명에서 나는 오래도록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는 어찌하여 웃음을 웃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세상에 던져진 삶의 문턱에서 그는 이미 너무 일찍 늙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어린 시절의 철없는 욕망과 떼쓰기를 멀리한 채, 애초부터 자신을 지워버리는 쪽을 택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하여 그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놓인 벽을 끝내 넘지 못했다. 그 벽 앞에서 좌절하고, 그 벽을 두드리며 자신을 ‘인간 실격’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를 곁에서 보았던 이는 말했다. 그는 착한 사람이었다고. 그가 스스로 파멸로 몰아간 것이 아니라, 세상이 그를 파멸적인 존재로 내몰았다고. 그가 조금은 이해되었다. 왜냐하면 내 안에도 요조처럼, 인간으로서의 실격의 그림자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그늘과 벽, 그리고 고독은 누구의 삶에도 닿아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