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독서록45

눅눅한 마음의 풍경

by 인상파

이태준의 「장마」(문학과지성사)


눅눅한 마음의 풍경


지금처럼 장마가 계속돼도 제습기 하나면 금세 뽀송해지는 시대가 아니다. 그때는 그런 전자제품이란 게 없던 시절이었다. 옷이며 책이며 살림살이에 피어나는 곰팡내와 습기가 감당이 되지 않아, 입는 옷마저 눅눅했고 책장마다 곰팡이가 피어오른 것을 그저 털고 닦고, 햇볕이 잠깐 들면 후다닥 내다 말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불쾌한 냄새와 꿉꿉한 공기 속에서는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눅눅해졌다.


이태준의 「장마」를 읽으면서 한 세대 전의 장마가 계속되는 어느 여름을 떠올렸다. 지금은 땅에 닿지 않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어 장마철에도 그럭저럭 지낼 만하지만,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장마철마다 여기저기서 피어오른 곰팡이와 곰팡내로 골치를 썩이며 닦고 털어내던 기억이 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키를 높이는 곰팡이를 바라보며, 작품 속 화자가 아내에게 건넨 싱거운 말, “곰팡이가 식물이든가? 동물이든가?”가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장마로 인해 곰팡이가 쓴 살림살이의 책임을 두고 벌어지는 부부의 싸움은 살뜰하고 정겹기까지 하다. 아내는 책을 보는 사람이 책의 곰팡이를 털라고 하고, 남편은 곰팡이를 먼저 본 사람이 털라며 맞선다. 말다툼은 이내 엉뚱한 곳으로 번져, 빗속을 뛰놀다 옷을 망치는 아이의 문제로 옮겨간다. 아내가 옷이 젖은 걸 걱정해 집안에 가두려 하자, 남편은 그걸 무책임과 몰상식을 운운하며 나무라고, 아내는 곧바로 경제적으로 무능한 남편을 공격한다.


결국 남편이 못박듯 내뱉는 한마디, “그럼 마음대로 해봐.” 무력한 체념이 묻어나는 그 말끝은 오늘날의 부부 싸움에서도 그대로 들릴 법한 현실의 대사다. 그리고 싸움의 발단이었던 곰팡이의 정체를 ‘식물인지 동물인지’ 묻는 남편의 말에 이르러서는 어이없다기보다 허무해, 싸움의 끝자락에 남은 인간의 피로가 전해진다. 어느 가정에서나 있을 법한 풍경이 그 시대의 장마 속에서 그대로 살아난다.


장마철의 울적한 분위기를 털어내기라도 하려는 듯, 남편은 결국 외출을 감행한다. 뚜렷한 목적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발길이 닿은 곳은 그가 1년이나 다녔던 신문사였다. 그곳에서 그는 기사를 쓰고 문학을 함께 하는 이들을 만났지만, “재미 좋으십니까?”라는 형식적인 인사나 오갈 뿐 손목을 잡고 의자를 권하면서도 그들이 자기 일에 열중하느라 건성 대답하는 것을 본다. 대화 속에는 진심이 없다.

고독감을 느낀 그는 말동무가 그립다. 조광사를 들르고 싶으나 그곳에서도 신문사에서처럼 바쁜 이들뿐이라 낙랑 카페에 들러 주인을 찾으나 주인도 집에 가고 없다. 카페에 오던 작가 구보도 이상도 오지 않아 누구든지 한 사람이라도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럴수록 그의 마음에 들어차는 것은 친구라는 존재다.

그는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함께 일하며 문학으로 관계를 맺어온 사람들을 ‘친구’라 부르기엔 그들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을.


“모두 한 신문사에 있었으니깐 알았고, 한 학교에 있으니깐 알았고, 한 구인회원이니깐 안 것뿐이 아닌가? 직업적으로, 사무적으로, 자주 만나니까 인사하고 자주 인사하니까 손도 잡고 흔들게 되고 하는 것뿐이지 더 무슨 애틋한, 그리워해야 할 인연이나 정분이 어데 있단 말인가? ‘친구 간에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이 모두 쑥스럽지 않은가?”

요즘의 우리와 다르지 않은 시각이다. 우리도 ‘친구’라는 말을 자주 쓰지만, 정작 그 말에 담긴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면 어딘가 공허해짐을 느낀다. 함께 일하고, 자주 연락하고, SNS에서 서로의 소식을 알고 지내지만, 그 관계 안에는 마음의 교류보다는 겉으로만 가까운 관계의 공허함이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태준이 1930년대의 문학청년들을 바라보며 느꼈던 허무와 회의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이어진다. 그에게 ‘친구’란 단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존재, 마음이 닿는 사람이었다.


함께 시간을 보냈던 사람들 틈에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끼던 그는 어린 시절 함께 자란 친구들을 떠올린다. 그들에 대해서는 육체적 특징과 버릇, 부모의 사람됨에서 집안 사정까지 알고 있는 걸 깨닫는다. 그러다가 친구 하나가 자신의 단편집 달밤과 담배꽁초를 담을 고불통 물뿌리를 부쳐달라는 부탁을 한 걸 기억한다.

그런데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 마음을 나누고 싶었던 그때 정작 그는 별로 탐탁치 않은 사람을 만나는데 그는 중학교 시절 친구 강이다. 양복 저고리 에리에 일장기 배지를 꽂은 강은 잇속이 빠른 인물로, 세상일을 낚시질에 비유하며 여학교에 출강 중인 화자에게 미모의 여학생을 색싯감으로 소개해 달라고까지 한다.

화자는 불쾌감을 감추고 그가 말한 낚시질에서 미끼만 따 먹고 말 궁리를 차린다. 결혼할 여자는 어려운 살림을 시키지 않을 거라는 강의 말에 그는 아내가 생각났음인지 중국 사람들의 거리에 들어서 아내가 좋아하는 돼지 족발을 사고 친구 학순에게도 자신의 단편집 《달밤》을 사서 부친다. 아내에게도, 친구에게도 마음을 쓰는 그의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자전적 색채가 짙다. 외출 후 그가 찾아나서는 인물들의 이름이 당대 문단의 실제 인물들과 겹치기 때문이다. 이상, 구보, 노산, 일석, 여수, 수주 등과, 구인회 같은 낯익은 이름들이 등장하여 당시 예술가들의 교류와 정서를 엿보게 한다.

결국 이태준이 「장마」에서 보여주려 한 것은 단지 눅눅한 계절의 풍경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관계의 온도와 외로움이었다. 장마로 젖은 집안과 곰팡내 나는 공기는 삶의 불안과 피로, 그리고 관계의 무기력과 연결되며 아내와 남편의 소소한 말다툼, 친구들과의 형식적인 대화, 어릴 적부터 이어온 친구에 대한 회상은 모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아내를 위해 족발을 사고, 멀어진 친구에게 책을 부치는 모습에는 삶의 눅눅함을 견디며 서로를 향한 온기를 놓지 않으려는 인간미가 배어 있다. 이태준은 그 따뜻함을 통해, 삶이 아무리 비에 젖어도 인간의 마음 한켠에는 여전히 마르지 않는 온기가 있음을 보여준다. 「장마」는 단순히 장맛비에 젖은 일상의 기록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비추는 정서의 풍경화다. 비가 내리듯 불만과 무료함이 쌓이고, 햇살이 잠시 비치듯 관계의 온기가 스쳐 지나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독서록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