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볕의 고통과 생명력
김유정의 「땡볕」(가람기획)
땡볕의 고통과 생명력
김유정의 「땡볕」은 가난과 무지, 그리고 뜨거운 생의 의지가 한데 얽힌 이야기다. 제목만 보면 그의 다른 작품 「소나기」처럼 우선 성적 이미지로 다가오지만, 「땡볕」은 욕정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가난한 부부가 삶의 막다른 길에서 맞닥뜨리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지게에 병든 아내를 얹고 병원을 찾아가는 남편의 모습에서 고려장이 연상되기도 한다.
병원에 가면 치료도 받고 월급도 나온다는 어이없는 소문 하나에 기대어, 배가 남산만큼 부른 아내를 지게에 지고 대학병원으로 향하는 덕순의 발걸음은 애처롭고 처절하다. 작년부터 배가 불러오던 아내는 열 석 달이 지나도 해산하지 않았다. 아이가 아니라 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서야 부부는 마지막 희망처럼 병원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그날은 중복, 숨이 막히는 땡볕이었다. 지게에 아내를 진 남편도, 지게 위의 병든 아내도 그 열기를 견디지 못해 헉헉댄다.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문턱은 언제나 높고, 병원의 차가운 벽은 그들에게 구원의 장소가 아니라 절망의 경계처럼 다가온다.
진찰 끝에 들은 말은 잔혹했다. 아내의 배 속에는 이미 죽은 아이가 자리 잡고 있었고, 수술을 해야 꺼낼 수 있지만 그마저 목숨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덕순은 간호사에게 “월급 같은 건 안 주나요?” 하고 묻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퉁명스럽고 냉담하다. 팔자를 고치려던 계획이 어그러짐을 알고, 그래도 아내의 목숨을 건지려 하지만 아내는 “죽으면 죽었지 배는 째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덕순은 그 말을 꺾지 못한 채 다시 지게를 진다. 죽이더라도 제 원대로나 죽게 하는 것이 남편 된 사람의 도리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오는 길의 땡볕은 병원을 찾아갈 때보다 한층 무겁고, 지게의 무게는 더 깊다. 지게 위에서 훌쩍이는 아내가 사달라는 얼음물을 사서 먹인 뒤, 마지막 남은 돈을 털어 왜떡까지 사서 먹인다.
수술을 거절한 아내에게 남은 것은 골방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일뿐이다. 왜떡을 물고 그녀가 남긴 유언은 참으로 눈물겹다. 사촌 형님께 꿔다 먹은 쌀 두 되를 갚으라는 것과 남편의 빨래를 영근 어미에게 부탁하라는 말뿐이다. 덕순은 그 유언이 너무 처량하여 눈물이 핑 돈다.
너무나도 순박한 이들 부부의 모습에 마음이 오래 머문다. 세상은 냉혹하지만, 그 안에서도 사람은 끝내 서로를 생각한다. 가진 것은 없고 배운 것도 없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만은 잃지 않는다. 김유정은 바로 그 단순하고 진실한 마음에서 인간다움을 드러낸다. 죽음이 삶을 덮어도, 그 마음만은 끝내 식지 않는다.
죽음을 앞둔 이야기인데도 그리 무겁지 않은 것은 김유정 특유의 해학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아내의 유언은 체념이 아니라 끝까지 남편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소한 부탁이지만 그 안에는 살아 있는 동안 지켜온 정과 미안함이 녹아 있다. 절망의 밑바닥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서로를 걱정하고, 먹고, 웃는다. 그것은 세상을 비틀어보는 냉소가 아니라, 고통을 견디기 위한 인간적 몸짓이다. 「땡볕」이 끝내 우리를 울리지 않고도 깊은 슬픔을 남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덕순은 아내에게 죽이라도 한 그릇 얻어다 먹이려고 다시 지게를 지고 집으로 향한다. “때는 중복 허리의 쇠뿔도 녹이려는 뜨거운 땡볕이었다.” 아픈 아내를 지게에 지고 땡볕 속을 걸어가는 부부의 모습에서 우리는 덕순 부부가 견뎌야 하는 삶의 고통과, 그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인간의 생명력을 본다. 땡볕은 그들을 짓누르지만, 그 속에서 피어난 인간미와 연민은 오히려 더 선명하게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