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독서록 81

생명 탄생의 경외와 불편함

by 인상파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


생명 탄생의 경외와 불편함


이 시를 읽으며 먼저 다가온 감정은 생명 탄생의 경외와 동시에 스며드는 묘한 불편함이었다. 국화꽃 한 송이가 피어나는 절정에는 생명이 도달한 경이로움이 깃들어 있지만, 그 생명 앞에 자연의 힘을 과도하게 끌어들이는 시인의 집착에는 어딘가 모르게 짙은 중압감도 함께 자리한다.


누님같이 생긴 국화꽃 한 송이의 생애는 우리 모두의 인생이다. 그 인생이 중년의 원숙함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국화로 비유하고 있으니 꽃에서 인생의 무게를, 인생에서 꽃의 무게를 동시에 느끼게 된다.


꽃을 피우기 위해 국화는 스스로 피어나지 않는다. 꽃이 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여러 조력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봄부터 소쩍새가 그렇게 울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어 왔다. 그 모든 울음과 부산함은 한 생명이 성숙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고통,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자연의 힘이 함께했음을 보여준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한 송이 꽃이지만, 그 꽃의 이면에는 계절의 울음과 기다림, 움켜쥐고 버텨낸 수많은 인내의 과정들이 촘촘하다. 그래서 국화 앞에 서면 단순한 자연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꽃을 밀어 올린 세계의 숨결과 생명이 도달하기까지 지나온 지난한 여정이 함께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도 함부로 대할 수 없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든다. 그런데 시인이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동원한 자연의 여러 조짐—소쩍새의 울음, 천둥의 울음, 뒤안길의 회한—을 처음에는 다소 과하게 결부시켜 인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자연이 생명을 키우는 일은 그 자체로 순리이고 우리는 그 질서를 그저 감사히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그런데 시인이 자연의 순한 흐름에 굳이 의미를 덧입히는 순간, 그 질서가 어딘가 뒤틀리는 듯하여 마음 한켠이 조금 불편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나의 의식이 불필요하게 예민해진 탓일 것이다. 생명 하나가 피어나는 순간을 향한 시인의 경외와 경건함이 그만큼 뜨겁고 깊었기 때문에, 그 모든 과장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진심처럼 느껴진다. 소쩍새의 울음과 천둥의 울음, 무서리까지도 국화가 피어나는데 동참한 듯한 이 연결고리는 자연 전체가 생명 탄생을 축복하는 하나의 합주처럼 읽힌다.


그리고 이 모든 이미지는 마지막에 가서 간밤의 무서리와 화자의 불면으로 수렴된다. 무서리라는 자연 현상과 인간의 내면적 떨림을 동일한 위상에 놓음으로써 자연과 인간의 감정이 한 생명의 서사 속에서 만나게 된다. 이 병치는 처음에는 불편했으나, 다시 보면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지 않고 한 호흡 안에서 바라보려는 시인의 태도가 느껴진다. 이 병치조차 숙연해졌다.


더욱이 절정의 순간에 이미 무서리가 내렸다는 사실은 곧 이어질 쇠락을 암시하며, 꽃의 절정이 곧 쇠락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깊은 슬픔을 내포한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이미 소멸의 기운이 깃들어 있는 이 역설은 국화를 더욱 숙연한 존재로 만든다.


이처럼 이 시는 아름다움과 슬픔, 절정과 쇠락, 경외와 불편함이 한 송이 국화 안에서 함께 작동하는 자리다. 바로 그 지점에서 〈국화 옆에서〉는 인생의 깊이를 탐사하는 하나의 비유가 된다. 국화 앞에서 술렁이던 화자의 마음처럼 독자 역시 자연과 인간 존재가 만나는 경계에서 잠시 멈춰 서게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독서록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