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유글 40

고통은 정말 나누어지는가

by 인상파

고통은 정말 나누어지는가


슬픔을 나누면 반으로 줄어든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이 말은 실제보다 바람에 가까운 말처럼 들린다. 슬픔은 덜어내면 줄어들고, 건네면 가벼워지는 물건이 아니다. 다만 함께 견디는 사람이 있을 때, 슬픔은 다른 형태로 변할 수는 있다. 줄어든다는 느낌은 슬픔의 양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숨 쉴 수 있는 틈이 생기고, 감정의 결이 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무게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정도에 가깝다.


‘슬픔’의 자리에 ‘고통’이라는 단어를 넣으면 이야기는 더 복잡해진다. 고통을 나누려는 쪽은 언제나 지고 있는 사람이고, 고통을 받아들일지는 상대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 불균형이 문제의 시작이다. 고통을 지고 있는 사람이 용기를 내어 말했는데, 상대가 흘려듣고 반응하지 않으며 가져갈 뜻이 없다는 신호를 보낸다면, 그 순간부터 고통은 원래의 고통에 몇 겹이 더해진다. 거절당하고 무시당했다는 생각으로 관계는 흔들리고, 스스로가 과한 존재가 된 것 같은 수치심까지 인다. 고통이 배가 되고, 제곱이 된다. 그것은 단순한 섭섭함이 아니다. 배신감이며, 인간적인 기대가 무너질 때 생기는 냉기다. “나는 이 사람에게 여기까지였구나”라는 깨달음이다.


그래서 고통은 점점 인간적인 언어를 벗어난다. 날카롭고, 울적하며, 스스로를 갉아먹는 방향으로 변해 간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자책이 아니라 거리다. 모든 사람이 타인의 고통을 담을 그릇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는 일이다. 고통을 흘려보내는 사람 앞에서 계속 설명하려 애쓰지 말 것. 고통은 설득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슬픔이나 고통이 덜어진 것은, 그것은 누군가가 대신 가져가 주어서가 아니다. 말없이 그 자리에 함께 서 있어 주었기 때문이다. 도망치지 않고,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곁에 남아 있는 것. 그것만으로도 고통을 짊어지는 사람이 혼자인 게 아니다. 그래서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슬픔을 외면당하면 배가 된다. 고통도 마찬가지다.


어머니가 급성 허리 골절로 입원한 지 2주가 넘었다. 간병을 하며 간이침대에서 잠을 자다 보니 몸 여기저기가 성한 곳이 없다. 허리와 어깨, 손목이 차례로 신호를 보낸다. 잠을 대신 자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평일을 통째로 맡아 달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다. 주말 오전 몇 시간, 어머니 얼굴도 보고 간병하는 사람도 잠시 숨을 돌릴 수 있게 해 달라는 정도였다. 자식 된 도리라면 그 정도는 서로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도리는 내 마음속에만 있던 기준이었던 모양이다.


그때부터 마음에서 계산이 시작된다. 몸의 피로 위에 정신적인 소모가 겹친다.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품고 있다가, 알아서 할 사람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결국 부탁을 했다. 그리고 거절을 당했다. 그 순간 고통의 성질이 바뀌었다. 몸의 통증은 견딜 수 있었다. 이유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에 밀려온 것은 육신의 고통이 아니라 관계에서 비롯된 정신적 고통이었다.


‘내가 너무 많은 걸 기대했나.’ 그 질문이 떠오른 순간부터 고통은 늘어난 것이 아니라 고립되었다. 기대가 어긋났다는 사실, 도리가 통하지 않았다는 깨달음, 관계의 온도가 생각보다 낮았다는 확인이 몸의 통증 위에 겹쳐졌다. ‘고통을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은 이 상황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고통을 나눠주길 바라며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손이 허공에 머무르면, 고통은 전혀 다른 성질로 변한다. 설명할수록 초라해지고, 이해를 기대했던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고통을 나눈다는 말은 아름답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나눌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 고통을 들이밀지 않는 것도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도리는 요구할 수 없고, 기대는 강요할 수 없다. 그걸 깨닫는 순간 마음은 더 쓸쓸해지지만, 적어도 헛된 기대로 상처를 키우지는 않게 된다.


고통은 혼자서도 견딜 수 있다. 하지만 기대가 어긋난 고통은 사람을 훨씬 더 빨리 소진시킨다. 고통을 나눈다는 말은 위로의 문장이지 현실의 공식은 아니다. 현실에서 고통은 나누어지지 않는다. 다만 외면당하지 않을 때에만, 조금 덜 아플 뿐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독서록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