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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침은 왔다

by 인상파

그래도 아침은 왔다


언니가 어머니 병실로 활짝 핀 동백꽃 두 송이를 가져온 것은 일주일 전이었다. 아침마다 오래가라고 정수기에서 냉수를 받아 병에 갈아 꽂아주었다. 나는 뿌리 없는 꺾인 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어머니를 위해, 병에 꽂힌 꽃이 하루라도 더 버텨주길 바랐다.


그러나 때가 되었던 모양이다. 물을 갈아주려고 꽃을 병에서 꺼내는 순간, 한 송이가 목이 꺾였다. 다른 한 송이도 옮겨 담자마자 힘없이 모가지가 부러지고 말았다. 그걸 무슨 불길한 징조로 여기지는 않았다. 다만 전날부터 상태가 좋지 않던 어머니가, 그날 결국 숨이 넘어가듯 쓰러지셨다.


화장실에 모시고 가 볼일을 돕고, 병실 복도를 워커에 의지해 걸으시게 하려고 뒤에서 엉덩이를 받치고 있었는데, 어머니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그대로 맥없이 주저앉고 말았다. 사람들이 몰려와 어머니를 침대에 옮기고, 산소 콧줄을 꿰고 이것저것을 확인했다. 숨은 다시 돌아왔지만 얼굴빛이 순식간에 낯설어졌다. 고비가 온 건가 싶었다. 그러나 폐렴도 없고, 검사상 뚜렷한 문제도 보이지 않아 일시적인 현상 같으니 지켜보자고 했다. 그날 어머니는 밥도 약도 드시지 못한 채 기력 없이 잠에 취해 계셨다.


그런데 한밤중에 대소동이 벌어졌다. 대소동을 벌인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었다. 같은 병실의 할머니였다. 사골에서 올라오셨다는 그 할머니는 경도 치매에 섬망 증상이 심했다. 시골에서 혼자 사시다가 넘어졌고, 시골 병원에서 엑스레이에 이상이 없다고 하여 통증 주사로 버텼다. 딸네 집에 와 다시 검사를 해보니 척추뼈가 심하게 부러져 시술조차 어려운 상태였다. 삼 주 넘게 병원 침대에만 누워 계신 탓에 낮과 밤의 구분이 사라졌다.


그날 밤도 자다 깨서는 집에 간다며 옷을 갈아입다 침대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간이침대에서 설핏 잠들었다가 ‘쿵’ 하는 소리에 놀라 달려가 보니, 할머니는 젖가슴을 헤친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간호사와 공동간병인들이 몰려와 침대와 옷가지를 치우고, 빠져버린 소변줄과 주삿바늘을 다시 꽂느라 병실이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이미 부러진 척추 말고 다른 곳에 금이 간 건 아닌지 엑스레이를 찍기 위해 침대차에 실려 나갔다. 간호사는 할머니를 진정시키려 딸에게 전화를 걸었고, 간호사는 그날 밤 할머니 곁에 보호자가 상주해야 한다며 딸을 불러들였다. 딸은 새벽에 택시를 타고 와 어머니 옆에 누웠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받아주느라 병실은 끊임없이 대화가 오갔다.


이 병실은 4인실이다. 4분의 할머니들이 모두 80대 후반이다. 병실에서 가장 간섭하기를 좋아하는 분은 그 할머니인데 말하기를 좋아하셔서 누워서도 사람을 지켜봤다가 한마디씩 꼭 덧붙인다. 나는 가끔 병실을 비울 일이 있으면 어머니에게 쓰레기를 버리고 오겠다고 하면서 빠져나가는데 꼭 같이 가자고 토를 단다. 그러면 어머니는 당신은 가지 않겠다고 하시고 나는 얼른 갔다 올 테니 절대 일어나지 말라고 당부 말씀을 드린다. 집에서 늘 쓰레기 버리러 간다는 말을 해서 병실에서도 그걸 써먹는다. 그럼 그 할머니는 그런 나를 지켜봤다가 벌썰(거짓말)도 잘하고 간다고 슬쩍 말을 놓는다.


그분과 달리 우리 어머니는 거의 말씀이 없으시다. 내리 눈만 감고 있다가 꿈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거기에 참견하느라고 한마디씩 불쑥 내뱉으면 사람들이 깜짝 놀란다. 말하는 걸 처음 본다고, 말할 줄도 알았냐고 묻고 있는 얼굴들이다. 다른 두 분은 귀가 어둡다. 한 분은 소리를 질러야하고 한 분은 그래도 양호하다. 두 분이 양쪽 무릎 수술을 하였는데 대각선으로 놓인 침대에서 걷는데 따른 불편과 통증을 얘기하는데 이야기가 따로 논다. 서로 주고 받는데 장애가 있으니 질러대는 소리도 장난이 아니어서 시장통처럼 소란스럽다.


어쨌든, 어머니 상태가 조금만 나아지면 하루라도 빨리 퇴원시키겠다고 마음먹었던 터라, 상태가 나빠지자 체력뿐 아니라 인내심까지 바닥나는 걸 느꼈다. 같은 병실의 한밤중 소동으로 잠을 거의 자지 못한 탓에 기분은 가라앉고, 기립성 빈혈이 앉았다가 일어날 때마다 찾아왔다. 몸과 마음이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그래도 아침은 왔다. 일곱 시가 되자 어김없이 아침 식사가 시작되었다. 밥을 드시자고 어머니의 입을 벌려 틀니를 끼우려 했지만, 어머니는 눈을 꼭 감은 채 입을 앙다물고 끝내 벌리지 않으셨다. 인간적으로 너무 이른 시간이었고, 밤새 앓은 소리를 낸 사람에게 밥을 먹이기에는 아직 몸이 따라오지 않는 시각이었다.


식판만 받아 침대 옆에 두고, 어머니를 다시 눕혔다. 조금만 더, 잠을 더 주무시게 한 뒤에야 식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았다. 아침은 시작되었지만, 어머니의 몸은 아직 밤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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