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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아저씨 국수 드세요 20

시인 아저씨 국수 드세요

by 인상파

시인 아저씨 국수 드세요, 신순재 글, 오승민 그림, 천개의바람


시인 아저씨 국수 드세요


시: 시원한 동치미를 곁들여

인: 인정스런 어머니가 국수를 말아주니

아: 아,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저: 저녁술을 놓고 사촌들과 모여

씨: 씨름 한판 하고 나서

국: 국수 한 그릇 더 말아달래 먹고

수: 수더분한 아저씨의 옛이야기 들으며

드: 드문드문 눈발 치는 밤

세: 세상은 고요 속에 잠들어가는데

요: 요령소리 마냥 내 눈은 말똥말똥

국수 한 그릇의 시심(詩心)


<시인 아저씨 국수 드세요>는 백석 시인의 시<국수>를 바탕으로 그의 다른 시 속 인물들을 불러와 국수를 대접하는 따뜻한 상상력을 펼친 그림책입니다. 한밤중에 어린 화자가 깨어보니 엄마가 부엌에서 커다란 가마솥에 국수를 삶고 있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장사꾼 아저씨들이 마당으로 들어서고, 이어서 〈여우난골족〉의 친척들, 〈가즈랑집〉의 할머니,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의 나타샤까지 차례로 등장합니다. 마지막으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시인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 모든 국수 잔치가 완성됩니다.

그림책은 백석의 시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국수’라는 매개를 통해 그 시절 사람들의 온기와 정을 되살려냅니다. 국수가 다 익고 나면,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인이 아랫목에 앉아 조용히 국수를 먹는 장면이 펼쳐지지요. 엄마의 손은 커서 그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국수가 남았고, 마지막 남은 한 그릇은 시인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국수 한 그릇으로 시인의 외로움을 감싸안는 장면은 추위를 잊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백석의 〈여우난골족〉은 명절날 친척들이 고향집에 모여드는 풍경을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그리면서 공동체의 따뜻한 삶을 엿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책은 그 시의 정서와 주제면에서 닮아있는데 백석 시인에 대한 오마주로 읽힙니다. 백석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반가움을, 어린 독자에게는 백석의 시에 흥미를 갖게 될 그림책이라 하겠습니다. 국수 한 그릇에 담긴 시심(詩心)과 온기가 오래 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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