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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만식 Jul 12. 2023

양재천의 빈 의자

양재천 공원에는 전망이 좋거나 아늑한 장소에 의자가 놓여 있어 주민들이 무거운 삶을  잠시 내려놓고 편한 마음으로 쉬고 있다.


서양에서는 의자를 사용하는 의자식 생활을 주로 해왔기에 각 시대의 생활양식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의 의자가 만들어졌다. 중국에서도 옛날부터 의자식 생활을 해왔다. 의자는 인간과 늘 함께 생활해 온 친숙한 생활 도구라 의자를 소재로 한 노래나 그림이 여럿 있다. 빈 의자에 대한 노래나 그림도 우리에게 편한 공간을 제공하는 느낌을 주고 있어 다정하게 보인다.

1980년대, 유행했던 '빈 의자'라는 대중가요가 있다. '서있는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 당신의 다리가 돼 드리리다.'라는 특이한 가사 노래다.

서있는 사람은 은유적으로 삶에 지친 현대인을 가리키고 빈 의자는 안식처로 표현했다. 정감이 가고 서정미가 넘치는 노래로 인기 좋았다.


세계적인 유명 화가, 반 고흐도 의자를 소재로 그린 유명한 작품이 있다. 하나는 '반 고흐의 빈 의자'고 또 하나는 '폴 고갱의 의자(빈 의자)다. 승려이자 수필가인 법정 스님은 영동지방 산골 마을로 거처를 옮기기 , 송광사 불일암에서 손수 만든 소박한 나무 의자도 있다.

법정 스님은 1977년 '서있는 사람들'이란 수필집을 발간하였는데, 정갈하고도 깨달음이 있는 글을 통해 중생들에게 영혼을 적시는 가르침을 몸으로 실천하신 분이다. 하지만 스님도 수행과 울력에 심신이 지쳤을 때, 그 나무 의자에 앉아서 휴식과 사색을 했다고 상상할 수 있다. 이 소박한 나무 의자 눈에는 스님도 아마 '서있는 사람들'로 보였을 것이다


나는 사계절 내내 양재천을 산책하고 의자에 앉아 사색도 한다. 봄철에는 벚꽃이 활짝 핀 벚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서 봄의 정취에 흠뻑 취해 본다. 어느 날은 의자에 사람 대신 벚꽃이 나무에서 내려와 앉아 있다.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철,  나무 그늘 아래 의자에 앉아서 가는 세월이 아쉽다고 요란하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무더위를 식힌다. 가을에는 낙엽이 의자에 떨어져 자연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휴식을 취하면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는 것처럼 보였다.


빈 의자는 '서있는 사람들'만 앉아서 쉬는 곳은 아니다. 아침에는 햇살이 내려와 아침 인사를 나누고, 고요한 밤에는 달빛이 내려앉아 빈 의자와 다정한 대화를 나눈다. 가끔씩 바람이 스쳐가고 세찬 소나기도  쏟아진다. 한겨울에는 흰 눈이 소복이 쌓여 멋진 정경을 보이기도 한다. 빈 의자는 늘 그 자리에서 사람이나 자연으로 채워져 있다.

빈 의자는 사람들이 늘 앉을 수 있는 공간이다. 빈 의자는 피곤한 사람을 위해 다리가 되어주고 때로는 혼자 앉는 사람들과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며 친구가 다.


법정 스님의 나무 의자를 보면 '비움이 채움'이라는 스님 말씀이 생각난다. 비움이 채움이듯 삶이 죽음이요 죽음이 곧 삶이라는 진리의 말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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